‘무도’ ‘스타킹’ 영광 누렸던 시간에 MBC SBS ‘재방 경쟁’
‘1박2일’ 제작 중단… ‘지상파 주말 예능’의 몰락
‘미운 우리 새끼’는 3부로 쪼개 유사 중간광고 2회로
지상파가 방송 환경 오히려 악화… 시청자 권익 침해 심각
#1. KBS2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 편’은 지난달 시청률 48.9%로 종방했다. 요즘 같은 다매체ㆍ다채널 시대에 높은 시청률이 나온 데는 방송 시간 덕도 컸다. KBS 주말드라마는 토ㆍ일요일 오후 8시~9시에 방송된다. 온 가족이 모이는 ‘황금시간대’에 편성돼 시청률 효과를 봤다. MBC는 직장인과 학생이 마음 편히 TV를 볼 수 있는 토요일 오후 3시간을 정작 재방송으로 채운다. 6일 오후 4시50분부터 7시50분까지 전날 방송된 ‘마이 리틀 텔레비전 V2’와 ‘나 혼자 산다’ 등을 다시 내보낸다. ‘무한도전’이 10년 동안 일군 값진 시간을 재방송으로 허비하고 있는 셈이다.
#2. SBS는 인기 예능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로 요즘 방송가의 눈총을 받고 있다. SBS가 7일부터 기존 2부(60분씩 2회)로 내보내던 ‘미운 우리 새끼’를 3부(40분씩 3회)로 쪼갠 뒤 유사 중간광고인 ‘프리미엄 광고(PCM)’를 1개에서 2개로 늘릴 예정이라서다. PCM 2회 추진은 지상파 방송3사 중 처음이다. 지상파 방송은 애초 60~70분 한 회로 방송되던 드라마와 예능을 2017년부터 30~40분씩 2회로 나눠 회 사이에 약 1분짜리 PCM을 1회 편성해 왔다. 지상파의 PCM 시행을 두고 시청자 볼 권리 침해 여론이 채 사그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오히려 PCM을 늘려 논란은 커질 전망이다. 국내 지상파 방송은 중간광고가 허용되지 않고 있다.
주말엔 재방송이 쏟아지고, PCM은 확대된다. 지상파의 요즘 방송 환경이다. 시청 환경 개선에 앞장서야 할 지상파가 재방송을 남발하고 광고 확대 ‘꼼수’를 부리며 방송 환경을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 공공재인 지상파 전파를 사용하는 지상파 방송이 공공성을 등한시해 시청자 권익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SBS는 토요일 7시간 재방송
지상파 방송의 주말 재방송은 심각한 수준이다. SBS는 토요일인 6일 정오부터 오후 8시까지 20분이 채 안 되는 뉴스를 제외하고 7시간 넘게 재방송만 내보낸다. 주초에 방송된 월화드라마 ‘해치’와 지난주에 방송된 ‘미운 우리 새끼’ 방송 등을 다시 내보내는 식이다. 2~3년 전만 해도 MBC는 토요일 오후에 ‘무한도전’을, SBS는 강호동의 ‘스타킹’과 김병만의 ‘주먹쥐고 뱃고동’을, KBS는 ‘불후의 명곡’을 선보이며 시청자에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방송가에서 최대 시청률 격전지 중 하나로 통했던 토요일 오후는 이제 재방송 대결장으로 전락했다. SBS는 지난 1월 ‘마스터 키’ 종방 이후, MBC는 지난달 23일 ‘선을 넘는 녀석들’이 막을 내린 뒤 토요일 오후 6시 대를 재방송으로 꾸리고 있다.
지상파 방송 주말 예능의 재방송화는 PD들이 연이어 이탈하면서 벌어졌다. 한 외주 제작사 관계자는 “주말에 신규 프로그램을 첫 소개하려면 ‘힘’을 줘야 하는 데 지상파에서 프로그램을 기획할 PD풀도 마땅치 않은데다 제작비 부담도 크다”며 “차라리 기존 인기 프로그램을 재활용해 시청률을 조금이라도 확보하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지상파가 저비용 고효율 논리로 인기 프로그램을 주말에 재방송하고 새로운 시도 없이 기존 프로그램의 시즌제 활용에 골몰하는 건 시청자 볼거리 침해”라고 꼬집었다.
KBS의 사정도 SBS, MBC와 크게 다르지 않다. KBS는 지난달 17일부터 일요일에 ‘해피선데이’의 코너 ‘1박2일’ 대신 주말 드라마 재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출연자였던 가수 겸 배우 정준영이 불법 영상 촬영과 유포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어 방송 제작을 무기 중단한 여파였다. 토요일 ‘무한도전’과 일요일 ‘1박2일’로 이어지던 지상파 방송 주말 오후 예능 전성시대는 과거의 영화가 됐다.
◇“방통위가 PCM 횟수 제한해야”
‘미운 오리 새끼’의 PCM 확대로 지상파 방송의 상업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진다. SBS는 ‘미운 오리 새끼’의 3부 쪼개기 편성을 두고 “온라인에서의 영상 소비 증가로 시청자가 호흡이 짧은 시청 패턴을 선호해” 내린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PCM 확대로 광고 수익을 올리려는 궁여지책으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피해는 시청자 몫이다. 방송 사이에 나오는 광고 횟수가 많아지면 시청자 입장에선 방송 시청 흐름이 끊길 수밖에 없다. 시청자 불편에도 불구하고 지상파가 PCM 확대를 강행하는 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탓도 크다. 지상파 방송이 “중간광고가 아니라 PCM”이라고 주장하며 규제의 사각지대로 빠져나갈 때, 방통위는 별 견제 없이 묵인했다. ‘방통위가 규제 완화에 힘쓰는 방송진흥원인가’란 비판까지 나오는 이유다. 방통위는 SBS의 PCM 확대 움직임에 대한 대응을 묻자 이날도 “법적으로 처벌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뒷짐을 졌다.
한석현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은 “방통위의 ‘방송법상으로 문제 없다’는 법률적 해석이 오히려 지상파 방송의 PCM 확대에 면죄부를 준 꼴”이라며 “시청자 불편이 큰 만큼 일시 중단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이나 PCM 횟수를 제안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SBS에 이어 KBS와 MBC도 PCM 확대를 추진할 수 있어 더욱 고삐를 당겨야 한다는 지적이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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