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박근혜 전 대통령, ‘다스 비리’ 이명박 전 대통령, ‘사법농단’ 양승태 전 대법원장…검찰의 대대적인 적폐 수사로 구치소는 권력형 죄수를 일컫는 이른바 ‘범털’들로 초만원이다. 하지만 구치소를 떠나 법정에 서면 똑같은 피의자 신분일 뿐이다. 다만 재판에 임하는 태도나 전략은 제 각각이어서 눈길을 끈다.
박 전 대통령은 ‘침묵형’으로 분류된다. 재판 기간 내내 힘 없는 모습으로 법정에 앉아 별다른 발언을 하지 않고 재판 진행은 변호인에게 일임했다. 2017년 10월 1심 재판부가 구속영장을 추가 발부한 뒤로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서 재판 거부에 들어갔다. 2심에선 아예 법정에 나오지 않아 “사법절차를 부정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형량도 1심보다 늘었다. 김윤호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의 이런 전략에 대해 “법정 진술이 유죄 증거로 사용될 수 있는 이상 말을 아낀 것은 적절했으나 재판 보이콧은 법원의 명령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다스 비리’ 혐의로 구속재판을 받는 이 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재판에 꼬박꼬박 출석하면서 필요할 때엔 말을 아끼지 않는 ‘적극 방어형’이다. 법정에서 방청석을 향해 환한 얼굴로 인사를 나누거나, 생수병을 들고 호쾌하게 물을 들이키는 등 여유 넘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1심서는 불리할 때마다 “거짓말 탐지기로 확인했으면 좋겠다” 등 작심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의 과도한 자신감은 그러나 패착이 될 때도 있다. 2심에서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이 불리한 증언을 쏟아내자 ‘미친 X”이라며 욕설을 하는 돌출행동으로 재판장의 경고를 받은 게 대표적이다. 차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변호인의 말이 잘 먹히지 않아 결국 개인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라고 분석하며 “유력 정치인의 경우 지지세력을 염두에 둔 장외 전략을 앞세우기도 한다”고 풀이했다.
‘사법농단’ 사태의 주축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피고인 중에서도 매우 드문 ‘강의형’이다. 구치소에서 자필로 적어 온 장문의 의견서를 낭독하는가 하면 행정법과 형사소송법 해설자 나서 눈길을 끌었다. 검사를 상대로 “웃지 마세요”라고 호통을 치는가 하면 “공소장은 검찰발 미세먼지로 생긴 신기루” “루벤스가 그린 성화를 어떤 사람은 포르노라고 한다” 등의 어록도 남겼다. 최근에는 과거 동료 판사를 상대로 직접 증인신문에 나서거나 검찰이 질문하기도 전에 막아서다 “소송 지휘는 재판장이 하는 것”이라는 지적까지 받았다. 한 변호사는 “법대에 앉아 재판만 하던 분이 피고인이 돼서도 체질을 못 버린 것 같다”고 평가했다.
법조계에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어떤 태도로 재판에 임할지를 주목하고 있다. 그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후배 법관이 나를 모함했다” “향후 법정에서 치열하게 다투겠다”고 밝힌 점으로 미뤄볼 때, 최고의 법률 전문가로서 세세한 법리를 놓고 주장을 펼칠 것으로 보는 관측이 많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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