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라이즌 4일로 상용화 앞당겼다는 소식에 정부ㆍ업계 비상
결국 미국보다 2시간 앞서 개통… “보여주기식 촌극” 비판 나와
지난 3일 밤 이동통신 3사엔 긴박한 상황이 펼쳐졌다. 오후 5시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지금 빨리 5세대(G)폰을 개통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연락을 받은 것이다. ‘세계 최초 5G 상용화’ 타이틀을 두고 신경전을 벌여 온 미국 버라이즌이 갑자기 11일로 예정돼 있던 상용화 일정을 4일로 당겼다는 외신 보도가 하나 둘씩 나오고 있었다. 오후 8시쯤 과기정통부는 이통 3사, 삼성전자 등 관계사들과 ‘세계 최초 타이틀을 지켜야 한다’는 뜻을 공유했다.
이통3사는 5일 개통 행사를 위해 섭외해 둔 5G 1호 개통자들에게 급하게 전화를 돌렸다. 삼성전자의 ‘갤럭시S10 5G’ 스마트폰이 긴급 조달됐고, 밤 11시 3사 모두 1호 가입자 개통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2시간 뒤인 4일 오전 1시(한국시간) 버라이즌이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선언했다. 간발의 차이지만 2시간 앞선 한국에서 1호 개통자가 나왔으니 세계 최초 타이틀은 지킨 셈이다. 4일 오전 8시 과기정통부는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공식 발표했다.
다만 일반 고객들이 갤럭시S10 5G를 구입해 5G 요금제에 가입하는 건 예정대로 5일부터 가능하다. 결국 지난밤 펼쳐진 ‘기습 개통’은 ‘세계 최초’ 타이틀을 위한 ‘보여주기식’ 개통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빠르고 탄탄한 생태계 조성과 적극적 투자를 통한 기술 표준과 서비스 주도가 진정한 5G 시장 선점을 가능케 하는 요소인데, 다른 나라보다 불과 몇 시간 빠른 세계 최초 타이틀에만 집착했다는 지적이다.
◇무엇을 위한 세계 최초인가
“세계 최초 LTE(4G)는 누가 했는지 아세요?”
세계 최초 타이틀과 시장 선점 효과의 상관관계를 묻는 질문에 이통사 관계자는 대뜸 이렇게 되물었다. 가장 먼저 LTE를 상용화한 곳은 스웨덴 이통사 ‘텔리아소네라’이다. 하지만 이를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오히려 LTE 기술력을 인정받은 곳은 한국이다. 국내 이통 3사는 LTE, LTE-A, 3밴드 LTE-A 등 LTE용 주파수를 묶어 속도를 배로 올리는 기술을 선도했다.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LTE를 제공하는 국가는 한국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속도가 빠른 나라’라는 이미지를 얻는 데 그쳤다. 과실은 유튜브, 페이스북이 가져갔다. 인프라는 갖췄지만, 그 빠른 속도 위에 올릴 서비스 준비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5G 상용화가 중요한 격변기라 평가되는 이유는,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이 쥐고 있는 주도권을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기 때문이다. 5G 시장을 선점하고 이를 통해 산업ㆍ경제적 효과를 보려면 생태계에서 뛸 선수들의 ‘킬러 콘텐츠’들이 철저하게 준비돼야 한다.
이통사 관계자는 “텔리아소네라가 최초 상용화 타이틀, 그 이상의 성과를 올리지 못한 건 일부 지역에서 부족한 기술로 서비스를 시작한 뒤 빠르게 고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새로운 이동통신 기술을 선점하려면, 망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하고 콘텐츠를 늘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5G 관련 서비스 경쟁력 인정받아야 선점 효과”
결국 정부의 실적을 위한 세계 최초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는 오는 8일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기념하는 대대적 행사를 준비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대대적인 행사를 통해 세계 최초 상용화를 홍보하고 산업 발전을 이끌겠다는 것인데, 세계 최초가 아니면 명분이 부족해 지니 급하게 몰아붙인 것”이라며 “과기정통부 실적에 ‘세계 최초 5G 상용화 성공’이라는 한 줄 때문에 벌어진 촌극”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5G 정책협의회 위원장을 역임했던 김용규 한양대 교수는 “세계 최초 상용화로 정보기술(IT) 강국의 이미지를 더 각인시키고 5G 단말기나 장비 수출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상용화가 이뤄진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관련 제품과 서비스들의 기술력과 경쟁력이 인정받아야 실질적인 선점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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