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테면 현재 재개발이 진행 중인 을지면옥과 양미옥이 자리잡은 세운3구역은 해당 토지주만의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 영업해온 사람들, 물건을 사고, 지나다녔던 사람들까지 그 모든 것들의 합이 세운3구역인 거죠. 따라서 도시를 개발할 때 이 모든 것들이 고려돼야 한다는 ‘도시권’ 개념이 시정의 중요한 지도 원리로 들어올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서울 광진구 건국대 연구실에서 만난 한상희 서울시 인권위원장(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서울을 ‘포용하는 인권도시’로 이끌기 위한 주요한 화두로 도시권 개념을 던졌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처음 주창한 도시권은 우리에겐 아직 생소하다. 도시에 거주하는 주민 누구나 도시가 제공하는 편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인데, 한마디로 도시는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것이라는 얘기다.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후보군에도 이름이 오르내리는 한 위원장은 지난달 출범한 제3기 서울시 인권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뽑혔다. 자치단체에서는 처음으로 2012년 닻을 올린 서울시 인권위는 시책에 대한 심의ㆍ자문 역할을 한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제2기 위원장을 지냈다.
“급격한 도시화가 투기와 겹쳐 이뤄지면서 젠트리피케이션과 함께 다른 한편에선 시민들이 올드시티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집단적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위원장은 “을지로 재개발처럼 이미 공사가 시작된 경우는 손대기가 어렵지만 시장에 개입하거나 권고할 수 있는 영역, 그 아주 좁은 틈새를 찾아내 인권적 가치를 채워 넣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기본적으로 개발계획을 세울 때부터 인권적 체크리스트를 개발해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개발 과정에서 밀려나는 사람들뿐 아니라 그로 인해 바뀌는 도시 공간에 대한 시민의 권리까지 존중하는 개발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은 이미 대한민국에서는 경쟁 불가능한 독주하는 도시거든요. 이런 도시에서 여전히 생산성과 경제성을 따지는 건 잘못됐다고 봐요. 경제적 기반이 갖춰진 만큼 더불어 살 수 있는 삶의 방식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14명으로 꾸려진 이번 인권위에는 장애인, 성소수자, 노인 등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 외에도 탈북민과 이주민 당사자가 포함됐다. 한 위원장은 “소수자 혐오 문제는 최근 가장 시급한 인권 현안 중 하나”라며 “소수자의 삶을 보장하는, 혐오와 차별이 없는 인권도시 서울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인권위 활동에 대해 “사실 행정 단위에서는 인권이라는 말처럼 귀찮은 게 없다”면서 “적어도 서울에서는 인권적 가치가 최우선은 아니더라도 거부하지는 못하는 여건을 만들어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인권위가 2014년 전국 최초로 감정노동자(다산콜센터)에 대한 인권 개선 권고를 내놓은 이후 시는 관련 조례와 지침을 마련하면서 감정노동자 인권 의제를 주도했다. 미투 운동과 갑질 문화가 사회문제로 대두될 때는 시 투자ㆍ출연기관이 ‘인권 경영’을 도입하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한 위원장은 공무원에 대한 인권교육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퀴어퍼레이드의 서울광장 사용 허가에 시간이 지체된다든지 인권적 가치에 대한 행정적 저항은 분명히 존재한다”며 “인권을 배척한다기보다는 인권적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테크닉이 부족한 경우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무원, 특히 결재라인의 간부급에 대한 인권교육이 절실한 이유”라고 덧붙였다.
“시민사회에서의 인권 욕구는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런 시민들의 목소리를 시에 전달하는 통로, 시정을 인권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창문이 되는 게 바로 서울시 인권위의 역할이죠. ‘우리는 인권 정책을 합니다’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시정에서 인권이 최우선적 판단 대상이 되는 체제를 만들겠습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