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에서 ‘삼성저격수’로 활동하는 동안 남편 이모 변호사가 소속된 외국계 로펌이 미국에서 진행된 13건의 삼성전자 관련 소송 사건을 수임, 수백억원의 수임료를 챙겼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변호사가 삼성에 소송사건을 요구하면, 삼성 대관 담당 부사장이 “박 의원에게 덜 물어 뜯기려면 도와줘야 한다”는 식으로 경영진을 설득해 소송을 맡겼다는 것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간사인 이종배 자유한국당 의원과 법조인 출신인 김용남 전 의원은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삼성저격수로 맹활약한 박 후보자가 삼성을 비판하는 사이, 남편은 삼성으로부터 거액의 수임료를 챙겼다”며 “박 후보자의 삼성 저격이 사실은 사익을 추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청와대는 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 재요청을 즉각 철회하고 박 후보자 역시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이들이 복수의 제보자로부터 입수,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 변호사가 소속된 외국계 로펌 DLA파이퍼는 2008년 10월부터 2018년 4월까지(제소일 기준) 삼성전자가 소송 당사자인 사건을 총 13건 수임했다.
김 전 의원은 “삼성전자 관련된 사건만 우선 찾은 것으로 그룹 전체로 보면 더 많을 것으로 본다”며 “건당 수임료가 최소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13건에 대한 수임료 총합은 수백억원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제보자에 따르면 이 변호사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에서 대관업무를 담당한 이모 부사장에게 연락해 ‘미국에서 벌어진 삼성 소송 관련 사건을 보내라’고 하면 이 부사장은 ‘우리가 박 의원에게 덜 물어 뜯기려면 도와줘야 한다’는 식으로 경영진을 설득해 사건을 보내주게 됐다고 한다”고 말했다.
17대 국회인 2004년 여의도에 입성해 내리 4선을 한 박 후보자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2005년 삼성그룹 계열사의 초과주식을 처분토록 하는 이른바 금산법(금융산업구조개선에관한법률안) 개정안, 2015년 2월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일명 ‘이학수 특별법’(특정재산범죄수익 등 환수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 등을 발의하며 ‘삼성저격수’로 불렸다. 그는 의정활동 과정에서 “삼성공화국이다. 우리나라 권력서열 0순위가 바로 삼성이다” 등의 발언도 했다.
이날 ‘13건의 사건을 이 변호사가 다 맡아서 했다는 증거가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김 전 의원은 “이 변호사는 외국계 로펌의 일본 도쿄 사무소에서 근무하며 높은 실적을 올리자 본사에서 2013년 서울사무소를 개소해 한국 총괄대표가 됐다”며 “변호사에게 소송보다 사건을 수임해 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이 변호사가 DLA 파이퍼에 입사하기 훨씬 전부터 해당 로펌에 특허 소송 등을 위임해 왔다”며 “소송 위임이나 수행은 미국 본사와 직접 진행한 것이며 이 과정에서 이 변호사나 그가 소속된 도쿄, 한국 사무소가 관여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박 전 의원 측도 “이 변호사는 삼성전자 일을 단 한 건도 수임하지 않았다”며 강력 반발했다. 이 전 부사장도 “삼성전자에서 밝힌 내용대로”라며 “제가 삼성전자에서 기획팀장으로 있던 시기(2015년 5월~2017년 2월)와 겹치는 사건은 (13건 가운데) 2건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될 것”이라고 일축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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