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한국에선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엄청나게 유행했다. 정치철학서로는 극히 이례적으로 200만부나 팔렸고, 샌델의 내한 강연에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갈구하는 열망이 얼마나 큰지, 다시 말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부정의하고 불공정한지를 보여 준 사례였다. 그로부터 7년 뒤 국정농단으로 민주주의를 유린한 현직 대통령이 탄핵됐고, 공정과 정의와 평등을 앞세운 새 정권이 들어섰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과 사회가 정의로워졌다고 과연 말할 수 있는가.
아시아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도 태생의 세계적 경제학자∙사상가인 아마르티아 센(86)은 정의는 ‘선언’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평생을 불평등과 빈곤 문제에 천착해 온 그는 ‘실천하는 정의’를 통해 해결책을 찾으라고 주문한다. 저서 ‘정의의 아이디어’에서다. ‘정의란 무엇인가’와 비슷한 시기에 나와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국내 소개는 다소 늦었다.
센은 전통적 ‘정의론’에 반기를 든다. ‘모든 사람에게는 기본적 자유와 평등한 기회가 동등하게 보장돼야 한다. 불평등이 발생했을 때 가장 어려운 이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줘야 한다’는 골자의, 존 롤스의 정의론 말이다. 너무나도 지당하지만, 영원히 실현되지 않을 듯한 이론이다. 센이 비판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완벽히 정의로운 사회가 무엇인지 정의(定義)하고 이를 완벽한 제도로 제시하려는 시도만으로는 정의 사회를 구현할 수 없다고 센은 역설한다. 한 마디로, ‘정의는 말이나 글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정의’를 말할 때,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는 까다롭고도 중요한 문제다. 피리 하나를 두고 다투는 세 아이가 있다고 치자. “유일하게 나만 피리를 불 줄 알아.” “나만 가난해서 장난감이 없어.” “무슨 소리, 내가 피리를 만들었어!” 셋 중 누구에게 피리를 줘야 할지, 쉽게 결정할 수 있는가.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에서 정의를 하나의 가치로만 재단할 수 없다. 센은 가치 판단의 ‘복수성’을 인정하되, 눈앞에 보이는 명백한 부정의를 제거하는 것이 정의에 가까워지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센은 ‘공적 추론’ 을 방법론으로 제시하는데, 사회적 토론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 정의’까지 합의해 나갈 수 있다는 게 책에서 펼치는 그의 논지다.
정의의 아이디어
아마르티아 센 지음•이규원 옮김
지식의 날개 발행•560쪽•3만3,000원
책 제목은 왜 ‘정의론’이 아닌 ‘정의의 아이디어’일까. 옮긴이 이규원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표준적 정의론은 완전성을 전제하는 반면, 센의 비교접근법은 불완전성을 받아들인다. 현실세계에서 무엇이 완전한 정의이고, 완벽한 공정한 제도인지 판별하는 ‘이론’은 더는 필요하지도, 충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모두가 공허하게 정의를 외치는 현실에서 잠시 눈을 돌려 작은 희망을 품게 해 주는 것이 책의 미덕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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