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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보이지 않는 곳이 중요하다

입력
2019.04.05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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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을 때 첫 번째 만나는 난관은 공사 견적이다. 크게 복잡하지 않은 신축 주택의 공사 견적을 받았다가 깜짝 놀라곤 한다. 건축 재료도 오르고 인건비도 많이 상승했다지만, 해가 다르게 견적이 뛰어오른다. 집을 짓는 일은 점점 만만치 않은 일이 되어 간다. 설계에서 너무 복잡한 부분이 있었나 되돌아보기도 한다. 무조건 가장 저렴한 업체를 선택하는 건 물론 아니다. 비용도 알맞고 실력도 좋은 시공자를 찾는 것과 별개로, 집주인의 예산 범위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안을 조정하며 견적을 맞춰 가는 작업도 동시에 한다.

먼저 가구류부터 도면에서 삭제한다. 살면서 하나하나 마련하는 것도 재미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분명 눈에 띄게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 다음으로 정원이나 외부의 마루 데크를 삭제한다. 일단 집부터 지어야 하니까, 데크는 나중에 상황이 되면 깔면 되니까. 그래도 예상 금액까지 낮추지 못하면 다음 타자는 마감재다. 인건비가 높은 페인트마감 대신 벽지로 바꾼다. 페인트마감이 빛 반사가 좋아 실내가 더 화사해지지만 요즘은 벽지도 훌륭하니까 충분히 대체재가 될 만하다. 그 다음으로는 바닥재를 한단계 낮은 등급으로 바꾼다. 설계안의 기본 생각을 해치지 않는 요소부터 바꾸거나 없애는 것이 내가 쓰는 방법이다. 그리하여 목표 금액에 도달하면 그제서야 공사를 시작한다.

수정 작업에서 최후의 고려대상은 ‘골조’다. 나중에 눈으로 볼 수 없는 부분이지만 건물의 뼈대에 해당하는 곳이며 집의 형태를 갖추는 것이 골조작업이다. 공사비가 여전히 예산을 뛰어넘는다면 골조를 콘크리트조에서 목조나 철골조로 바꿀 수도 있다. 목조로 지었지만 겉으로는 콘크리트조와 똑같이 마감할 수 있고 단열이나 집의 성능에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 골조는 설계에서 가장 먼저 고려하는 요소지만 뒤늦게 변경되기도 한다.

리모델링에서는 골조를 가장 먼저 본다. 마감재로 둘러싸여서 골조를 볼 수가 없기 때문에 망치와 톱으로 마감재를 뜯고서라도 꼭 확인해야 한다. 겉이 멀쩡하다고 속까지 멀쩡하게 여기면 큰코다친다. 30년도 채 되지 않은 강남의 15층 건물이 붕괴 위험에 처했던 일이 있지 않았나? 인테리어업체가 마감재를 뜯다가 위험할 정도로 노후된 골조를 발견했던 것이다. 설계된 것과 실제 시공이 달라서 약한 기둥이 충분한 내력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공사비를 아끼고 시공을 편하게 하느라 설계를 변경하는 일도 종종 있지만, 골조를 튼튼하게 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건물의 마감재를 뜯고 수십 년 동안 건물이 잘 지내 왔는지 뼈대를 살펴본다. 만약 크랙(금)이 가 있다면 유심히 살펴야 한다. 건물에 나타나 있는 균열은 많은 것을 말해 준다. ‘나는 이렇게 힘을 받고 있었지요’ ‘나는 이 부분이 취약해요’ ‘이 방향으로 서서히 기울어지고 있어요’ 크랙은 건물의 언어인 것이다. 금이 갔다고 곧 무너질 거라 겁낼 일은 아니다.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건물이 말하는 것들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의사가 환자 가슴에 청진기를 대보는 것과 비슷하다. 초진은 중요하다.

리모델링 작업을 하고 있는 한강변 경사지의 주택에서도 여러 가지 크랙들을 발견했다. 크랙의 변화들을 관찰하면서 집이 수십 년 동안 앞쪽으로 약간씩 움직인 것을 발견했다. 눈에 안보일 정도로 조금씩 변화한 것이지만 앞으로 수십 년을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보강하기로 했다. 지하층의 보와 기둥을 살펴보니 경사지 석축에 골조가 얹혔고 중간에 추가로 지었는지 골조가 분리되어 있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던 건물의 역사가 읽혔다. 골조를 더듬으면서 집의 문제가 분명해졌다. 보이지 않는 곳을 잘 살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정구원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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