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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문턱 낮춘 예타… “지역 격차 해소” 불구 SOC 남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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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문턱 낮춘 예타… “지역 격차 해소” 불구 SOC 남발 우려

입력
2019.04.04 04:40
수정
2019.04.04 09:22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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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 사업 검증 1년 이내로 단축, 비수도권에 지역 균형 비중 늘려

GTX B노선 사업은 수혜 예상… “혈세 낭비 억제 무력화되나” 우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에 참석하며 이재갑 고용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에 참석하며 이재갑 고용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국책사업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 제도’가 20년 만에 개편된다. 비(非)수도권에서 추진하는 사업은 예타의 문턱이 낮아지고, 예타 기간도 평균 19개월에서 1년 이내로 단축된다. 갈수록 심해지는 지역격차를 줄이자는 취지지만, 한편에선 예산낭비를 막고자 도입한 예타 제도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비수도권 사업은 ‘균형발전’ 비중↑

정부는 3일 경제활력대책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예타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예타는 예산 300억원 이상을 투입하는 도로ㆍ철도 등 건설사업의 사업성을 따져보는 제도로, 1999년 도입됐다.

지금은 △경제성(35~50%) △정책성(25~40%) △지역균형발전(25~35%) 등을 두루 고려한 종합평가(AHP)가 0.5를 넘어야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 하지만 갈수록 경제성이 당락을 가르는 핵심 변수로 작용해, 인구가 적은 지방에서 추진하는 사업은 예타 문턱을 넘지 못하고 이에 따라 지역격차가 더 커진다는 지적이 높아지자 20년 만에 수술대에 오른 것이다.

개편안에 따르면 앞으로 예타는 지역별로 ‘이원화’된다. 비수도권 사업은 경제성 비중이 5%포인트 줄고, 지역균형 비중이 그만큼 늘어난다. 또 지금은 부산ㆍ광주 등 5개 광역시를 비롯한 비수도권 36곳은 “낙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역균형 평가 때 점수가 깎였는데(최대 -9점), 이 같은 감점 제도도 사라진다. 반면 수도권 사업은 지역균형 항목을 없애고, 경제성(60~70%)과 정책성(30~40%)만 평가한다.

정책성 평가에는 삶의 질 등 사회적 가치가 반영된다. 그간 주로 재원조달 등 경제성 위주로 평가하던 데서, 앞으로는 일자리나 생활불편 개선효과 등도 중요하게 보겠다는 의미다. 또 신도시 분양가에 포함시켜 입주민들에게 분담시킨 ‘광역교통개선부담금’을 정책성 평가에 반영한다. 주민들이 교통 인프라 비용을 부담한 사업은 점수를 더 주겠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전담하고 있는 예타 조사기관에 조세재정연구원이 추가된다. 또 평균 19개월이 걸리는 조사기간이 1년 이내로 단축된다.

◇수도권 숙원사업 운명 달라질까

개편안은 다음달 1일 지침 개정 후 현재 예타가 진행 중인 사업부터 적용된다. 올해 1분기(1~3월) 예타 대상으로 선정된 사업은 △신분당선(수원 광교~호매실) 연장 △문경~김천 단선전철 등 12건이다. 비수도권 사업들은 경제성 평가 비중이 낮아져 5대 광역시 등 지방거점→기타 시ㆍ군 순으로 예타 통과율이 높아질 전망이다.

수도권은 사업별로 유불리가 다르다. 경제성 비중이 70%까지 높아지며 ‘비용 대비 편익(B/C)’이 절대 변수가 돼서다. 가령 신분당선 연장사업은 주민들이 사업비 1조1,200억원 중 5,000억원을 부담한 점이 이번 예타부터 가점이 되지만, 경제성 비중 상승은 마이너스(-)다. 2017년 예타 당시 B/C값이 0.39에 그쳤다. 위례ㆍ동탄 등 수도권 2기 신도시 입주민들이 낸 교통 인프라 부담금은 약 17조8,000억원에 이르지만, 이번 개편으로 이들 사업이 예타를 통과한다고 단언하긴 어려운 셈이다.

반면 예타가 진행 중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B노선(인천 송도~경기 남양주)은 수혜가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남양주 왕숙지구가 제3기 신도시에 포함되며 GTX-B노선의 B/C값이 높게 나올 것”이라며 “이번 개편으로 수도권에선 B/C 1.0 안팎의 사업만 예타를 통과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귀띔했다.

예비타당성조사 개편안, 1999~2018년 예타 진행실적, 연도별 예타 평균 조사기간. 그래픽=김경진 기자
예비타당성조사 개편안, 1999~2018년 예타 진행실적, 연도별 예타 평균 조사기간. 그래픽=김경진 기자

◇예타 제도 무력화 우려도

전문가들은 지역격차 해소를 위한 예타 제도 개선 취지에는 공감한다. 김태일 고려대 교수는 “최근 10년간 예타를 통과한 건설 사업 가운데 B/C값 0.8 이하는 거의 없었는데, 이는 경제성 항목이 사실상 통과 여부를 좌우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인구나 물동량이 적은 지역에 현행 예타 제도가 불리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규모 예산이 드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남발을 막아온 예타의 ‘문지기 기능’이 무력화될 거란 우려가 여전하다. 실제 1999~2018년 예타를 거친 849건 중 약 35%(300건)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예산 154조원 가량을 아낀 셈이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지역사업의 정성평가가 60% 가량으로 늘어나 자의적 결정이 가능하게 됐는데, 한정된 예산을 어떤 사업에 우선 투입할지 원칙도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대규모 국책사업이 정치논리에 휩쓸릴 우려도 적지 않다. 정부는 그간 KDI가 총괄하던 종합평가(AHP)를 앞으로 기획재정부 내 ‘재정사업평가위원회’에 맡기기로 했다. 지나치게 B/C값에 휘둘리던 데서 벗어나, 정책성과 균형발전을 적극 반영하겠다는 의미다. 한 예타 전문가는 “비수도권 예타에서 경제성 비중을 5%포인트 낮춰도 통과율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이보다 중요한 건 AHP 결정권한이 기재부로 넘어가 정성평가를 높일 수 있다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김태일 교수는 “기재부의 예타 결정이 정치적 압력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AHP 결정기구를 금융위원회처럼 독립기구화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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