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 필요한 가전제품이 늘어나는 시대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공기청정기, 건조한 겨울에는 가습기, 덥고 습한 여름에는 에어컨과 제습기, 각종 무선 전기 제품에 점점 용량이 커지는 냉장고까지 전기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것이 많아진다. 그럴수록 걱정되는 것이 바로 전기 요금이다. 에너지 소비 효율 등급도 확인해 보고, 전기 요금 누진제 때문에 요금 폭탄을 맞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우리는 흔히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왔어.”라고 말한다. ‘전기세’ 대신 ‘전기료’, ‘전기 요금’, ‘전깃값’, ‘전기비’ 같은 말도 쓴다. 이것들에 차이가 있을까? 사전에서는 ‘전기세’를 ‘전기료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 ‘전기를 사용한 데에 대한 요금’으로 풀이하고 있다. ‘세(稅)’는 세금, 즉 국가나 지방 공공 단체가 국민으로부터 거두어들이는 돈을 뜻한다. 전기세는 세금의 개념이라기보다 전기를 쓴 대가로 내는 비용이기 때문에, 엄밀하게는 ‘전기세’가 아닌 ‘전기료’, ‘전기 요금’이라고 칭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사전에서는 ‘전기세’라는 말이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언어 현실을 반영하여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말과 말이 결합하여 또 다른 말을 만들어낼 때, 서로 비슷한 의미를 가진 표현 중에 어떤 것끼리 만나 결합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전기’ 뒤에는 ‘세(稅)’, ‘값’, ‘료(料)’, ‘비(費)’ 등 다양한 말이 결합하고 대부분 그 쓰임이 나타나지만, 어느 하나의 결합형만 많이 쓰이는 경우도 있다. 하나만 맞고 다른 것은 틀린 것이 되기도 하고, 널리 쓰이는 표현을 수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언어는 들여다볼수록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신비한 대상이다.
이유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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