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보단 깨끗” 편견이 검증 부실 초래
김의겸도 ‘기득권 핵심’ 인식 못 한 때문
진보세력, 도덕성 문제에서 겸손해져야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이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으로 근무하면서 경험한 일을 쓴 글이 있다. 처음 맡은 임무가 논문 표절로 낙마한 김병준 교육부총리 후임자를 찾는 거였는데 보수에서도 받아들일 만한 전문성을 갖추고 검증도 통과할 수 있는 인물을 고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국가인재 데이터베이스와 주변에서 추천을 받은 30여명을 대상으로 일일이 평판을 조사하고 논문과 저서를 체크하는 등 매우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거쳤다. 그런 후에는 인사수석이 배석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장시간 면접을 봤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 난맥상을 보면 사람을 고르는 치열함이 참여정부 때보다 덜한 듯하다. 인사 추천을 맡은 조 수석만 해도 드러난 성적표는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인사청문회 벽을 넘지 못한 인사가 10여명이고 이번에도 장관 후보자 2명이 도덕성 문제로 낙마했다. 왜 그럴까. 진보진영에 상대적으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더 깊이 들어가면 현 정부의 보수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이 인사 실패의 근본적 원인이다. “그래도 우리가 보수보다는 깨끗하다”는 편견과 확신이 검증의 그물을 성기게 했다고 본다. 독재시절 학생운동에 앞장선 이들은 졸업 후 변변한 직장을 갖기 어려웠다. 그들을 지탱한 것은 도덕적 자부심이었지만 민주화 이후 기득권에 편입되면서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의 뒤처짐을 만회하려는 듯 자녀 교육과 부동산에 집착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머리는 진보를 향하지만 몸은 철저히 이해타산에 함몰됐다. 결국 우리 편은 문제가 없다는 젊은 시절의 인식이 고착화한 것이 이번 사태를 부른 셈이다.

며칠 전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얘기가 나왔다. 모두 그와 친분이 있는 이들이었는데 한결같이 거액의 부동산 매입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뒤통수를 맞은 것 같다”고도 했다. 자신이 권력과 기득권의 핵심이 됐는데도 여전히 도덕적 순결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현황에도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자유한국당과 민주당 의원들 간의 재산 격차가 거의 없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19대 국회 마지막 해인 2016년에는 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 의원 평균이 23억원, 민주당 13억원이었던 것이 이번 20대 국회에서는 각각 평균 44억원과 40억원으로 비슷해졌다. 물론 재산 보유 정도가 청렴성의 척도는 아니지만 평균적 국민보다 월등히 많은 재산만 놓고 봐도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없음을 보여준다.

월간중앙 신년여론조사에 따르면 국정 집권세력이 갖춰야 할 자질로 도덕성(59.6%)이 유능함(33.7%)보다 더 중요하다고 국민들이 여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도덕성에 흠집이 생긴 대통령과 정부는 국가를 이끌어갈 동력을 잃게 된다. 김영삼 대통령이 임기 후반부에 지지율 6%의 ‘식물대통령’이 된 것은 도덕성 논란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지방선거 압승 후 참모들에게 유능함과 도덕성, 겸손을 강조했다. 이 덕목만 갖춰도 지금 수준의 보수정치는 가볍게 제칠 수 있다고 봤을 것이다. 하지만 채 일 년도 안 돼 무능은 돋보이고, 도덕성은 실추되고, 태도는 오만하다면 무슨 재주로 총선과 대선에서 이길 것인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번 사태에 대해 “사람이 없다”고 했다고 하는데 책임 회피성 발언밖에는 안 된다. 주변을 둘러보면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면서도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전문성도 갖춘 인물들이 적지 않다. 인재를 널리 구하고 그들의 자질과 능력을 평가하는 게 그의 책무다.

한국인의 도덕 지향성을 연구한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는 “한국인은 비뚤어진 것에는 올곧은 것으로 맞서고, 올곧은 것을 상대할 때는 올곧음을 겨룬다”고 했다.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정권은 보수든, 진보든 지지를 받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도덕성 문제에서 겸손해져야 한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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