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이인 응우옌티탄씨 2명
“한국 정부가 베트남에서의 과거는 덮을 수는 있어도, 우리의 상처는 지울 수 없을 것입니다.”
1일 제3회 제주4ㆍ3평화상 시상식이 열리는 제주 제주시 제주칼호텔에서 만난 베트남 퐁니-퐁넛마을 출신 응우옌 티 탄(59)씨와 동명이인인 하미마을 출신 응우옌 티 탄(62)씨는 50여년 전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사건에 대해 침묵하는 한국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지난해 4월 22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 원고로 참석해 학살 당시 상황을 증언해 승소 판결을 이끌어 냈다. 이들은 또 베트남으로 돌아가서도 피해자로만 머물지 않고 평화인권운동가로 활동하면서 같은 학살피해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준 공로로 이날 4ㆍ3평화상 특별상을 수상하게 됐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제주를 찾은 탄(하미마을)씨는 “11살 때 경험한 학살사건 당시의 상처는 아직도 인쇄한 것처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4ㆍ3사건 피해 할머니들을 만났을 때 (할머니들이) 나보다 더 오래 고통의 시간을 견뎌왔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며 “베트남으로 돌아간 후 한국에서 본 것과 들은 것들을 주변 피해자들과 공유했다. 특히 4ㆍ3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벌인 활동을 보고 배워 평화인권운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탄(하미마을)씨는 1968년 1월 24일 한국군에 의해 135명이 희생당한 하미마을학살 생존자로, 당시 어머니와 동생을 잃었다. 탄씨도 수류탄에 왼쪽 귀의 청력을 상실했다. 왼쪽 다리와 허리에는 수류탄 파편이 박혔던 상처가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또 다른 탄(퐁니-퐁넛마을)씨는 같은 해 2월 12일 74명이 숨진 퐁니-퐁넛마을학살 생존자다. 당시 8살이었던 탄씨는 왼쪽 옆구리에 총상을 입고 다낭병원에서 혼자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던 중 3개월만에 숙모가 찾아와 부모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둘 다 학살사건 이후 가족들과 헤어진 채친척집과 남의 집에 얹혀 살면서 모진 세월을 견뎌야 했었다.
이들은 4일 청와대를 방문해 자신과 같이 학살 피해를 입은 생존자와 희생자 유족 등 103명의 청원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탄(퐁니-퐁넛마을)씨는 “지난해 평화법정에서 한국 정부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1년이 되도록 사과 한마디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청원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라며 “50년이 지난 일이지만 한국 정부는 (학살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슬픈 과거를 덮자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학살로 인한 상처와 고통을 그대로는 덮을 수 없어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국 정부가 직접 베트남에 와서 보길 바란다. 아직도 생존자들이 많이 남아 있다”며 “한국 정부는 진상규명을 통해 사실을 인정하고, 피해회복에 대한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탄(하미마을)씨는 “청원서에는 우리의 바람이 모두 적혀 있다. 청원서 내용대로 한국 정부가 진심 어린 사과와 함께 피해 보상에 나서야 할 것”이라며 “우리의 인생이 많이 남지 않았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지금 세대에서 아픈 과거를 마무리해야 한국과 베트남의 미래세대들이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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