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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국가 R&D는 국민에게 답하라

입력
2019.04.02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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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이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에 대해 1년여간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임소형 기자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이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에 대해 1년여간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임소형 기자

돈을 들인 만큼 나아지길 바라는 건 당연지사다. 유리지갑의 수모를 감수하고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국민의 마음이 그렇다. 국가연구비는 세금의 일부다. 과학자들의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데 국민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그리고 기대했다. 국민을 위협하는 상황이 닥칠 때 과학이 지혜로운 해결책을 알려줄 거라고 말이다. 이 기대는 지난 몇 달 동안 덧없이 무너졌다.

포항지진의 원인이 인근 지열발전소였다는 정부조사연구단 발표가 지난달 나왔다.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지열발전이 지진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는 사실은 수십 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는 해당 지역의 지질 특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스위스 바젤 지열발전소는 물을 넣은 지 6일만에 지진이 일어나 문을 닫았고, 프랑스 슐츠 지열발전소는 작은 지진들을 줄여가며 10년 넘게 전기를 만들고 있다.

포항에서 지열발전을 하려면 지하 환경부터 면밀히 연구했어야 한다. 물 주입을 얼마나 했느냐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그곳이 지열발전을 해도 괜찮은 지역이었는지를 되묻는 게 먼저다. 지열발전 실증연구에 관여한 과학자들은 지진 위험성을 파악하는 연구에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최악이다. 활성단층 존재를 전혀 몰랐다는 해명은 공허하다.

지열발전과 지진 연관성에 대한 연구는 없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연구도 위험성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 지진 가능성을 포괄적으로 언급하거나 해외 사례를 분석하는 데 그쳤다. 알려진 연구들에 들인 금액만해도 수백, 수천만원인데, 정부는 “지열발전 계획을 변경하거나 뚜렷한 안전 대책을 세우기엔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스스로 선정해 투자한 연구를 스스로 무용지물 만든 셈이다. 지진으로 국민이 집을 잃고 나서야 정부와 과학자들은 몰랐던 단층을 찾아냈다.

국가연구비가 투입된 연구들은 보수와 진보정권이 서로를 비난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진보 측은 과거 보수정부들이 위험성을 지적한 연구들을 뭉갰다며 비판하고, 보수 측은 진보정권 중에 일어난 재난을 제대로 연구하지 않았다며 맞받았다. 비판의 빌미를 제공한 연구들은 한계가 있거나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다. 국가연구개발은 그렇게 정치권의 ‘핑퐁게임’만 부추겼다.

미세먼지 연구도 다를 게 없다. 한 정부출연연구기관이 개발한 미세먼지 유해성 측정용 유전자칩 시제품은 2년 넘게 연구실에만 보관돼 있다. 미세먼지 저감용 화석연료 첨가물은 발전소 현장시험까지 마쳤지만 개발이 중단됐다. 해당 기술을 개발한 과학자들은 또 국가연구비를 쓰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러면서 “미세먼지 연구한다, 관련 기술 개발한다 했는데 왜 안 줄어드냐 물으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지난 연구결과는 묻어놓고 정부는 미세먼지 잡겠다며 1조원 규모의 추경 편성을 검토한다고 한다. 과학계 한 원로는 “정부도 연구자들도 지금까지 뭐 했냐는 소리를 들을만하다”고 비판했다. “기존 연구결과를 분석해서 성과는 활용하고 보완점은 반영하는 식으로 국가연구비 사용에 연속성이 있어야 하는데, 정부가 바뀔 때마다 새로 시작하니 중복 연구만 계속되고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이다. 과학자들 사이에선 추경 미세먼지 연구비는 차라리 안 받는 게 낫다는 얘기도 나온다. 단기 성과 압박에 시달리거나 다음 정부 때 어떻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지 모른다는 푸념이다.

지진도 미세먼지도 참 많이 연구했는데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는 없다. “연구는 연구일 뿐, 상용화는 다른 영역”이라는 일부 과학자의 발언은 무책임하다. 아들 졸업식이 열리는 미국 대학에 국가연구비로 출장을 다녀온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국가연구개발을 바라보는 국민의 실망감에 정점을 찍었다. 국가연구비의 주인은 장관도 과학자도 아닌 국민이다.

임소형 산업부 차장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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