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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일본 새 연호 레이와(令和)

입력
2019.04.01 18:00
수정
2019.04.01 18:1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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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등 서구에서 예수 출현을 기점으로 한 서력(西曆)이 오래전 정착한 것과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연도를 세는 방법으로 연호를 널리 사용했다. 군주마다 새로 이름을 정해 정치적 지배의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방편이었다. 알려진 가장 오래된 연호는 기원전 140년 중국 한(漢) 무제(武帝)의 ‘건원(建元)’이다. 연호가 늘 한 군주에 하나였던 건 아니다. 정치적 격변이나 천재지변, 상서로운 일 등 큰 변화가 있을 때 같은 왕 아래서 고쳐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한 사람의 왕 아래 한 가지 연호가 정착된 것은 명대부터라고 한다.

□ 중국의 이런 문화는 한반도와 일본, 베트남 등 주변국으로 전파됐다. 한반도에서 연도가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연호는 광개토대왕비문에 등장하는 ‘영락(永樂)’이다. 삼국시대는 백제, 신라도 각자 연호를 사용했지만 이 전통은 신라가 당과 가까워져 당의 연호를 가져와 쓰면서 바뀌었다. 고려, 조선도 송, 요, 명, 청의 연호를 그대로 사용했다. 다시 독자 연호를 쓴 것은 1894년 갑오개혁 이후 ‘개국(開國)’이 등장하면서부터다. 그 뒤 30여년 일본 연호 시기를 거쳐 해방 뒤 ‘단기(檀紀)’를 쓰다 1961년에 지금의 서기로 바뀌었다.

□ 연호는 왕정의 산물이어서 이 제도와 함께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라졌다. 중국은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이 무너지면서, 베트남은 1945년 민주공화국이 되면서 폐지했다. 이런 역사성과 무관한 대만이나 북한의 ‘민국’ ‘주체’ 연호를 별개로 하면, 왕정 시기 연호를 지금도 사용하는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 일본 정부가 5월 1일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에 맞추어 새 연호를 ‘레이와(令和)’로 정했다고 1일 발표했다. 645년 ‘다이카(大化)’로 시작된 이래 248번째 연호다.

□ 일본 사회는 일왕 교체를 시대 변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이를 문자로 대변하는 것이 연호다. ‘메이지(明治)’에는 근대화가, ‘쇼와(昭和)’에는 침략과 성장이, 30년간 이어져온 ‘헤이세이(平成)’에는 침체와 안정이 각인된다. ‘레이와’ 시대 일본은 어떤 미래를 그려나갈까. 아베 총리는 새 연호의 의미를 “사람들이 아름답게 마음을 나누며 문화를 만들고 키워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정신대로라면 새 일왕 시대에는 불편한 한일 관계도 차츰 풀려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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