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광화문과 대한문 앞의 태극기집회를 보면 미군정과 단독정부 수립 과정에서 숱한 난관과 역사적 굴곡을 겪은 해방 정국의 혼란을 보는 듯하다. 집회 현장에 등장하는 역사 왜곡과 극단적 논리들은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시대와 판박이다. 미군정의 친일 경찰∙관료 등용과 실정, 민중 희생의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상황, 현대사에 대한 성찰과 고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일방적이고 과도한 주장들로 채워져 있다.
태극기집회는 촛불집회의 대척에서 박근혜 탄핵에 반대하는 소수집단의 정치적 주장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점차 세를 확대하며 반공 논리와 안보이데올로기를 내세우고 과거 민주주의 탄압 시대의 구호를 빼닮아가고 있다. 주권자 의지에 따른 헌법 절차에 의해 이뤄진 탄핵의 정당성을 태극기세력에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들은 어떠한 논리에도 수긍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활용이나 하듯 자유한국당 지도부의 역사 왜곡과 이념적 편향이 도를 넘고 있다. 지지율이 오르니 더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 1948년 일제 청산을 위해 제헌국회에 설치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를 국민 분열의 원인으로 몰고, 보훈처가 약산 김원봉에 대한 서훈 수여 가능성을 언급한 것을 두고 “좌파 이념 독버섯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정통성을 갉아먹고 있다”며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한 의열단장을 지낸 약산을 “반 대한민국 공산주의자”라고도 규정했다. 김원봉은 의열단장과 임시정부 군무부장을 지낸 항일독립 운동가다. 한국당은 약산이 여운형 암살 등 좌ㆍ우익 테러가 빈번한 해방 정국에서 신변 위협으로 월북한 사실 등 역사적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월북 자체만 문제 삼아 독립투쟁의 역사를 왜곡하는 전형적 이념 편 가르기를 멈춰야 한다.
1980년 5ㆍ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5ㆍ18 유공자를 ‘괴물집단’으로 매도한 자들에 대한 국회 제명 논의조차 되지 않는 현실은 3ㆍ1운동 100주년이 되어서도 일제 잔재가 청산되지 않은 한국사회의 자화상이다. 한국현대사에서 친일과 반공은 일란성 쌍생아다. 1948년 9월 22일 반민족행위처벌법 공포를 전후해 서울 시내와 국회엔 ‘친일파 청산을 주장하는 자는 빨갱이’라는 내용의 전단이 살포됐다. 친일 세력을 통해 정권을 유지 강화하고자 했던 자유당 이승만 정권의 반공국가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다.
내일은 제주 4ㆍ3항쟁 71주년이다. 1990년대 이전까지 제주 4ㆍ3은 ‘사건’ ‘반란’ ‘폭동’ ‘인민무장투쟁’ ‘제주민중항쟁’ 등 다양하게 불려 왔다. 4ㆍ3이 북한의 사주와 남로당 중앙의 지령에 의한 공산폭동이라는 관점과 반공정권의 구미에 맞게 반공이데올로기의 시각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과거사 규명 작업이 이뤄져 이념적 편향을 배제하고 당시 제주 민중의 시각으로 보면서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제주 4ㆍ3이 ‘빨갱이’에 의한 폭동 혐의를 벗음으로써, 희생과 학살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지만 여전히 항쟁의 역사는 배제되고 있다.
제주 4ㆍ3은 통일국가 수립을 원했던 통일운동의 성격과 해방 당시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상황이 배경이 됐고, 그런 상황을 물리력으로 억압한 미군정의 정책 실패가 봉기의 주요 원인이었다. 따라서 당시 미군정의 학정에 대한 민중 투쟁적 성격이 배척되어선 안 된다. 좌익에 동조한 것에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고 아직까지도 이념적 적대와 증오를 동원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면 이는 반민주적, 반역사적 죄를 짓는 일이다.
한국당 지도부는 좌파독재, 좌파사회주의, 좌파연합의회 등 좌파 용어를 무분별하지만 정략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 ‘종북’을 대체한 ‘좌파’는 역사 왜곡과 정치 폄하의 수단으로 동원ㆍ전락하고 있다. 한국당은 제1야당답게 책임 있는 공당으로서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한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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