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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공직에 나아가려는 자, 잔도(棧道)를 끊어라!

입력
2019.04.01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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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가 끝났다. 결과가 어찌되었던 국민은 곧 새로운 장관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어떤 자세와 태도로 공직으로 나아갈까?

삶 속에는 인생의 승부를 걸 시기와 자리가 있다. 돌아갈 자리를 생각하지 않고 결연히 승부수를 던졌을 때에만 승리할 수 있다. 항우에 맞서 중원의 패권을 다투던 유방은 한중(漢中) 땅에 들어간 직후 잔도(棧道)를 불태웠다. 되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잔도를 끊어 항우의 근거지인 관중(關中)을 넘보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보이는 한편 와신상담하여 마침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유방과 함께 천하쟁패를 도모했던 한신은 조나라 20만 대군에 맞서 도망칠 수 없는 배수진을 쳐 적군에게 비웃음을 샀지만 강을 등진 병사들은 필사적으로 싸워 이겼고 마침내 유방의 통일의 초석이 되었다.

열정을 넘어 비장한 이들의 선택은 오늘날 공직을 꿈꾸는 이들에게 한 가지 교훈을 던진다. 돌아올 자리를 남겨놓지 않은 이들의 전심과 전력은 무한한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달라졌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이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여전히 유효하다. 왕조 시대의 공직자들이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쳐 헌신했다면 민주주의 시대의 공직자들은 주권자인 국민을 향해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 것이 의무이며, 사명이고 헌신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공직자들에게 이런 절실하고도 감동적인 노력을 찾아볼 수 있는가? 오히려 우리는 국회의원직을 그대로 둔 채 장관직을 수행하는 정치인, 국회의원 재임경력을 바탕으로 대학총장직을 맡는 교수를 흔히 보게 된다. 의원이 입각하여 지역구 현안에 소홀해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해당 지역구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고, 장관으로서도 해당부처를 운영하는 리더로서의 역할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공직을 맡았던 교수가 그대로 되돌아가 다시 똑같은 강단에 서는 것은 공직을 개인의 학문적 신념을 시험해 보는 장으로 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국회의원이 장관직을 겸하고 교수가 공직에 나아가며 사직이 아닌 휴직을 하는 관행은 당사자에게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겠으나 5,000만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할 자리가 갖는 무게에는 걸맞지 않다. 설사 제도가 (국회의원의 국무위원직 겸직 허용과 같은) 그늘을 제공한다 할지라도 공직을 꿈꾸는 이들 스스로가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제는 국민들의 눈높이가 전과 다르고 더 이상 공직자들의 안일한 인식과 구습을 용납하지 않음을 각성해야 한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거느린 조조의 위(魏)는 촉(蜀)에게 버거운 상대였다. 제갈량은 세 부족을 알면서도 두 차례 출사의 변을 바치고 북벌에 나섰고, 전력을 다해 싸웠으나 패했다. 그는 오장원에서 사망했고 촉은 무너졌다. 당대의 싸움에서 제갈량이 지고 조조가 이겼지만 역사의 싸움에선 제갈량이 이겼고 조조가 패했다. 오늘날 조조의 고향에는 생가조차 보존되어 있지 않지만 제갈량을 기리는 사당은 중국 전역에 무수히 남아있다.

공직을 꿈꾸는 이들은 제갈량의 정신이 역사로 부활해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후세의 평가를 경외해야 한다. 공직자의 바람직한 자세와 인물상은 무엇일까? 우리는 언제 멸사보국, 살신성민의 공직자를 대면하게 될까?

우리 공직자들도 권력의 원천인 국민들을 향해 돌아올 자리를 남겨놓지 않는 절실한 자세로 직을 맡아야 한다. 특히 고위 공직자일수록 자신의 이름과 행보가 역사에 기록되어 후세의 평가를 받게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공직은 할 일은 너무나 많고 기다려줄 시간은 없는 자리다. 돌아갈 곳을 과감히 정리하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을 각오로 임해야 하는 자리이다. 청와대로, 내각으로, 국회로, 지방자치단체로 향할 미래의 공직자여, 잔도를 끊고 배수의 진을 치고 나아가시라!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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