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가 ‘한 나라 두 대통령’으로 분열된 베네수엘라에서 정면충돌하고 있다. 러시아가 최근 베네수엘라에 군 병력을 실은 수송기를 보낸 것과 관련해 미국이 철수를 요구하자 러시아는 이런 요구를 일축하면서 오히려 미국을 비난하고 나섰다. 양측 모두 베네수엘라의 지정학적ㆍ전략적 가치를 의식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30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우리는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위협하고, 그 나라 경제를 질식시키며, 국제법을 공공연히 위반해 베네수엘라를 내전으로 몰고 가는 일을 멈출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러시아 군인 100여명과 물자를 실은 수송기 2대가 지난 23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외곽의 공항에 착륙한 데 대해선 “결코 파병 부대가 아니며 러시아가 베네수엘라에서 모종의 군사작전 행동을 할 것이라는 추측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베네수엘라에 파견한 러시아의 전문가들은 지역 안정에 아무런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자하로바 대변인의 성명은 전날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서반구 바깥에 있는 행위자들이 베네수엘라에 군사 자산을 배치하는 데 대해 경고한다”고 밝힌 지 하루만에 나온 반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지난 27일 백악관에서 베네수엘라 야권 지도자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의 부인 파비아나 로살레스를 만난 뒤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에서) 나가야 한다”면서 “두고 보자. 모든 옵션이 열려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엘리엇 에이브럼스 미 국무부 베네수엘라 담당 특사는 러시아의 군사인력 파견이 고장난 러시아산 S-300 지대공미사일 시스템 수리를 돕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50여개국은 과이도 의장을 베네수엘라의 임시대통령으로 인정하고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으나, 러시아와 중국 등은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말 베네수엘라에서는 잇따라 발생하는 대규모 정전 사태에 항의하는 야권 지지자들과 정전 사태의 원인이 미국이라고 주장하는 마두로 정권 지지자들이 각각 거리시위를 벌여 긴장감을 높였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30일 카라카스 근교 로스 테케스에서 야권 지지자 수천명이 집회를 열어 마두로 정권을 규탄했다. 집회에 참석한 과이도 의장은 “우리는 모두 정전 사태의 책임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바로 마두로다”라며 “이 부패한 ‘도둑 정권’을 쫓아내는 절차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마두로 지지자들도 같은 날 카라카스 시내에서 미국의 제국주의 행태를 비난하는 가두시위를 진행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양정대 기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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