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최근 지정학적 도발에 맞서기 위해 유럽연합(EU)은 이번 러시아 월드컵에서 단일팀을 구성할 계획이다.”
러시아 월드컵이 열리기 두 달 전인 지난해 4월1일. 허핑턴포스트 영국판은 유럽이 단일팀을 구성해 월드컵에 참가한다고 보도했다. EU본부가 위치한 벨기에가 자국 대표팀을 희생해 EU의 출전권을 마련했으며,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감독을 맡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손흥민의 팀 동료이자 잉글랜드 간판 스트라이커인 해리 케인이 EU 대표팀에 뽑힐 경우, 같은 G조에 속한 조국의 골 문을 겨눌 것이라는 우려도 뒤따랐다. 물론 만우절 기념 장난 기사다.
수많은 해외언론은 매년 만우절을 기념해 장난 기사를 내놓는다. 아무도 믿지 않을 만한 허무맹랑한 농담부터 영상이 동반된 그럴듯한 과학기사까지, 영역과 분야를 가리지 않고 ‘누가 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놓나’ 경쟁을 펼친다. 하지만 최근 뉴스 형식을 띤 ‘가짜 뉴스’가 세계 곳곳에서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오면서 자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몇몇 장난 기사는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섰다. “스위스에선 이상기온으로 나무에서 스파게티가 열린다”고 보도한 1957년 영국 BBC방송 보도, ‘산세리페’라는 가상의 섬에 대한 1977년 가디언의 특집기사 등이 대표적이다. 1976년 4월 1일 “오전 9시47분에 명왕성과 목성이 나란히 배열돼 지구의 중력이 감소한다. 이를 경험하고 싶으면 이 시각에 점프를 해보라”는 BBC라디오 생방송도 ‘성공적인’ 장난 보도로 꼽힌다. 라디오에 속아넘어간 수많은 청취자로부터 “중력 감소를 겪었다”는 전화가 쇄도할 정도였다.
정치 풍자도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다. 미 공영라디오 NPR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낙마한 리차드 닉슨 전 대통령이 대선에 다시 도전한다고 1992년 보도했다. “전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습니다.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닉슨 전 대통령의 음성을 들려주는 건 물론, 정세 분석을 위해 하버드대 교수까지 라디오에 출연시키는 정성을 보였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1999년 “정계의 심각한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인을 장관으로 영입하는 법안을 만든다”며 자국 정치권을 겨냥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온갖 구설에 휘말려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쉬운 먹잇감이 됐다. 아일랜드의 아이리시타임즈는 2017년 만우절에 “트럼프 대통령이 더블린의 16층짜리 건물을 구입해 5성 호텔로 개조한다”고 보도했다. 엄청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자신의 부동산 소유나 매매 현황을 전혀 밝히지 않아 심각한 이해충돌 우려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더블린에 작은 타워를 하나 구입했다”고 쓴 트럼프 대통령의 가짜 트윗이 등장해 기사를 더욱 그럴듯하게 만들어줬다. 그런 식이라면 올해는 북한 원산에 트럼프 호텔을 짓기로 했다는 만우절 장난 뉴스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유통되는 ‘가짜 뉴스’가 전세계적인 골치거리로 떠오르면서 이 같은 기사에 대한 경계심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스웨덴 일간 스몰란스포스텐 등 일부 유럽 매체는 2017년 만우절 장난 기사를 쓰는 전통을 중단했다. 미국 비영리 팩트체크 기관 포인터연구소는 지난해 “가짜 뉴스의 시대에 만우절 기사가 웃긴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장난 기사를 작심 비판했다. 세계 언론인들이 지난해 만우절 다음날인 4월 2일을 ‘국제팩트체킹데이(IFCD)’로 제정한 것 역시 이 같은 추세와 무관치 않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