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1인자에겐 위협적인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세계대회 3관왕…유·무형적 가치 평가↑
반항적인 대국 매너와 거친 입담도 ‘넘버1’…“이해한다”vs“지나치다” 평가 엇갈려
하반기엔 중국 최고 명문인 칭화대에 특례 입학 예정…끊임없는 ‘이슈 메이커’
커제 9단이 지난해 12월 ‘2018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에서 우승 직후,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기뻐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스포츠팬들은 스타에게 열광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짜릿한 승리와 함께 전해진 청량감은 스타들만의 전유물이다. 스타들에게 종종 불거지는 각종 이슈 또한 쏠쏠한 재미다. 천부적인 재능에 더해진 자유분방한 기질의 스타라면 팬심은 쏠리기 마련이다. 스포츠로 자리매김한 바둑계 분위기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바둑계에선 중국 간판 스타인 커제(22) 9단이 이런 유형이다. ‘이슈 메이커’인 그는 언제나 화제를 몰고 다니기 때문이다.

우선, 자국내 반상(盤上)을 장악한 커제 9단은 현재 자타공인의 세계 바둑계 지존이다. 세계 1인자에겐 불리한 인공지능(AI) 시대에 들어서도 자국내외 각종 기전에서 크고 작은 우승컵을 수집하고 있다. 커제 9단의 행마는 반상 이외에서 또한 활발하다. 자국내 각종 오프라인 이벤트 행사의 단골 초대 손님인 커제 9단 인기는 ‘아이돌’급이다. 실력만큼이나 잡음도 많다. 바둑계내의 각종 구설 부문이 있다면 커제 9단의 랭킹은 단연 세계 1위다.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익어가는 커제 9단의 현주소를 복기해봤다.

커제(맨 왼쪽) 9단이 올해 1월 중국 구이저우성에서 열린 ‘제4회 백령배 세계바둑선수권’ 결승전에서 신진서 9단과 대국을 벌이고 있다. 커제 9단은 3번기(3전2선승제)로 진행된 이 대회에서 2승으로 우승컵을 차지했다. 한국기원 제공
현재 세계대회 3관왕…위협적인 인공지능(AI) 환경에서도 건재, 커제 9단 가치 UP

커제 9단의 스타성은 역시 ‘큰 게임’에서 빛을 발한다. 현재까지 특별 초청이나 이벤트 기전을 제외하고 진출했던 8번의 세계 대회 결승에서 거둔 성적은 무려 7승1패(승률 87.5%)다. 2008년에 입단한 커제 9단은 2015년부터 매년 세계 종합기전 우승컵을 수집하고 있다. 실제 ‘2015 백령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우승상금 약 1억7,000만원)를 시작으로 ‘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3억원)와 ‘2016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대회’(3억원), ‘2016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2017 신아오배 세계바둑오픈전’(3억 7,000만원), ‘2018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2019 백령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우승 트로피는 커제 9단 소유다. 커제 9단은 이 가운데 ‘백령배(2019년)’와 ‘삼성화재배’(2018년), ‘신아오배’(2017년) 등의 타이틀을 보유한 유일한 세계대회 3관왕이다. 비공식 세계 바둑 랭킹 사이트인 고레이팅(3월말 현재)에서 커제 9단이 신진서(19) 9단과, 박정환(26) 9단에 이어 3위로 기록돼 있지만 바둑계내의 실질적인 체감 랭킹에선 1위로 평가 받는 이유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여전히 ‘넘버1’으로 건재하단 부분에서 커제 9단의 유·무형적 가치는 배가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월등한 성능으로 무장한 AI의 존재는 ‘인간계 1인자’들에겐 치명적일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다른 경쟁자들로부터 보이지 않게 누려왔던 절대강자로서의 프리미엄이 AI로 인해 반감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상에서도 마찬가지다. 3년전 바둑계에 새판짜기를 강요하면서 기존 패러다임까지 완전히 바꿔 놓은 구글 AI 알파고 역시 당시 1인자로 올라선 커제 9단에겐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왔다. 실제, 커제 9단은 2017년 5월 알파고와의 맞대결에서 3전3패로 완패했다. 빠른 수읽기는 물론 탁월한 포석과 뛰어난 감각 등으로 인간계를 평정해 온 커제 9단의 위상은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 하지만 커제 9단은 이런 상황에서도 세계 대회 3관왕을 차지, 여전히 전성기를 이어가고 있다. 커제 9단의 경쟁력이 다시금 주목 받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현 바둑 국가대표팀 코치 겸 바둑TV 해설위원인 박정상(35) 9단은 “1인자인 커제 9단은 AI의 등장으로 장점이었던 포석이나 특유의 감각까지 묻힐 수 있었는데 이런 걸 모두 극복해내면서 현재 세계 대회 타이틀을 3개나 갖고 있다”며 “먼 훗날 바둑계에서도 ‘커제 9단의 시대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의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커제(왼쪽) 9단이 올해 2월 중국 쓰촨성에서 박정환 9단과 벌인 ‘2019 CCTV 하세배 한·중·일 바둑쟁탈전’ 결승에서 실수가 이어지자, 오른손으로 자신의 뺨을 세차게 가격하고 있다. 생방송으로 중계된 이 경기 도중 커제 9단이 바둑돌을 바닥에 집어 던지는 장면도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유튜브 캡처
대국 도중 “와, XX” 한국말 욕설 논란에, 바둑돌도 바닥에 집어 던져…구설수도 ‘넘버 1’

커제 9단은 실력 이외에도 다양한 ‘볼거리’를 낳고 있다. 대국 도중, 실수로 패색이 짙었을 때 나오는 과격한 행동은 커제 9단만의 전매특허다. 최근 커제 9단은 욕설 논란에 휩싸인 것도 같은 연장선이다. 커제 9단은 이달 21일 일본 도쿄에서 열렸던 박정환 9단과의 ‘월드바둑챔피언십 2019’(우승상금 약 2억300만원) 결승전에서 대국 후반 치명적인 실수가 나오자, 자신의 손으로 뺨을 세차게 가격한 다음 “와, XX”이란 자책성 발언을 내뱉었다. 본인에게 직접 확인되진 않았지만 발음상으론 한국말 비속어인 욕설에 가까웠다는 게 당시 경기를 지켜본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 방송은 생중계로 전파를 탔다.

이 보다 앞선 대국에서 터져 나온 커제 9단의 ‘바둑돌 투척 사건’은 상당한 파장을 낳았다. 올해 2월 중국 쓰촨성에서 열렸던 ‘2019 CCTV 하세배 한·중·일 바둑쟁탈전’(우승상금 약 1억3,000만원)에 나선 커제 9단은 역시 박정환 9단과의 생방송 대국 도중 연속된 실수에 자신의 뺨을 후려친 데 이어 착석한 의자를 뒤로 밀치면서 쥐고 있던 바둑돌까지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는 모습이 포착된 것. 이 방송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아직까지 네티즌들의 입방에 오르내리고 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국가대표팀 감독인 목진석(39) 9단은 “자기의 뺨을 때린 것은 상관 없지만 바둑돌을 뿌린 건 용납될 수 없다”며 “커제 9단 정도의 위치의 기사라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충고했다.

거친 입담 또한 커제 9단에겐 빼놓을 수 없는 주특기다. 2016년 3월, 벌어졌던 이세돌(36) 9단과 알파고의 매 대국 경기 결과에 따라 “알파고는 날 이길 수 없다” “이세돌 9단의 경기는 절망적이었다” “나도 알파고에게 패할 수도 있다” “알파고? 나에게 도전할 자격은 부족하다”는 등의 가벼운 언행을 쏟아냈다. 알파고를 상대로 이세돌 9단은 1승3패를 거뒀지만 커제 9단은 단 한판도 이기지 못하면서 눈물까지 흘렸던 장면은 바둑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커제 9단이 2017년 5월 구글 AI인 알파고와 가진 마지막 대국에서 패한 직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중국 시나바둑 제공

바둑팬들 사이에선 커제 9단의 이런 행동에 대해 “일반 스포츠에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언행과 행동이다”는 긍정적인 시각과 “아직까지 예와 도를 중요시 하는 문화스포츠인 바둑에선 있을 수 없는 행동이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엇갈린다.

한편 커제 9단은 올해 가을 중국 최고 명문인 칭화대에 입학할 예정이다. 최근 공개된 ‘2019년 우수 운동선수 무시험 입학추천 명단’에 따르면 커제 9단은 칭화대 경영학과 입학자 명단에 포함됐다. 중국에선 우수한 성적을 낸 선수들에 한해 입학시험을 치르지 않고 원하는 대학에 입학 가능한 특례제도가 있다. 중국 프로바둑 기사 가운데 구리(36) 9단은 2015년 칭화대 역사학과에 입학한 바 있다. 중국 시진핑(66) 국가주석과 후진타오(77) 전 국가주석이 이 대학 출신이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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