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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 1인용 화장실을 만들어주신 선생님, 제 인생의 스승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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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 1인용 화장실을 만들어주신 선생님, 제 인생의 스승이죠”

입력
2019.03.28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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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태 섬들장애인보호작업장 원장 “장애인과 비장애인, 배려와 양보가 정답”

정순태 섬들장애인보호작업장 원장. 어린 시절에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하지만 대구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에서 가장 활동적인 회원으로 통한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정순태 섬들장애인보호작업장 원장. 어린 시절에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하지만 대구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에서 가장 활동적인 회원으로 통한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정순태 원장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교실이 내가 만난 가장 이상적인 사회였다”고 고백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정순태 원장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교실이 내가 만난 가장 이상적인 사회였다”고 고백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교실에 저만을 위한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정순태(46)섬들장애인보호작업장 원장은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을 잊을 수 없다. 당시 초임교사였던 담임선생님을 비롯한 반 친구들 덕분이었다. 장애를 거의 못 느낄 만큼 배려하고 양보해줬다.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화장실이었다. 화장실이 1층에만 있어서 교실이 있는 3층에서 1층까지 내려갔다 와야 했다. 한번 내려갔다 오는데 20분이 걸렸다. 담임선생님이 고심 끝에 교실 뒤켠에 1인용 소변기를 만들었다.

“봄까진 괜찮았는데 여름이 되자 냄새가 났어요. 제가 선생님에게 말씀드렸죠. 1층까지 내려가서 볼일을 보겠다구요. 계단 오르내리는 연습을 무지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5분 만에 다녀올 수 있겠더군요.”

초등학교 5학년 이후 장애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그 친구들과 함께 중고를 진학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별 무리 없이 취업을 한 까닭이었다. 취업한 4층에 있는 인테리어 사무실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하루에 10번 이상 오르내리는 것이 불편했지만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꼭 한번 장애를 강하게 인식한 적이 있었다. 여자친구 부모님께 인사를 하러 갔을 때였다. 차에서 내리는데 얼굴이 아니라 다리를 쳐다봤다. 다가서지도 못하고 목례만 했다.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그는 “저의 장애를 의식한 유일한 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두 번째 사귄 여자 친구와는 결혼에 성공했다. 그때도 똑같이 부모님께 인사를 하러 갔는데, 문밖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가 그의 다리가 아닌 눈을 쳐다봤다. 그 순간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확신은 결혼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무너졌던 마음도 다시 회복됐다. 정 원장은 “초등학교 5학년 정순태로 자존감이 회복되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 5년 동안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준 분”이란 감사 전화를 받은 사연

2001년, 대구지체장애인복지협회에 1년 계약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8년간 일하던 인테리어 업체가 문을 닫았을 즈음, 마침 협회에 자리가 난 거였다. 협회에서 일하면서 장애인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비장애인들이 장애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하듯 장애인들 역시 세상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사시는 장애인분들을 대상으로 활동보조 지원 서비스가 있어요. 장애인을 돕는 역할을 하는 분을 붙여주는 거죠. 활동보조인에게 막 대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은 장애인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동료인 셈인데, 그런 부분에 대한 인식이 없더라고요.”

장애인 지원 기관들이 여러 군데지만 진정한 도움이 요원할 때가 많다는 생각도 했다. 특별한 경험이 있었다. 2004년 즈음, 어느 중증장애인의 집에 비데를 놓아주자고 시청에 제안했다. 담당 공무원이 난색을 표했다. 일반 가정에도 비데가 보급되지 않은 상황에서 ‘복지대상자’에게 고가의 비데를 설치하는 건 과하다는 의견이었다. 정 원장은 “비장애인들에게는 일상이 조금 더 편해지는 것이겠지만, 중증장애인에게는 단순한 편의 제공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설득했다.

“큰일을 볼 때마다 복지관 직원을 불러서 뒤처리를 했더라고요. 자신의 치부를 보이는 게 너무 민망하다고 하소연을 하더군요. 이분은 차라리 밥을 손으로 먹는 한이 있어도 비데는 있었으면 하는 눈치였어요.”

결국 비데 설치에 성공했다. 이후 근무처를 옮기기 전까지 5년 가까이 명절만 되면 그 장애인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선생님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정말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 같다”면서 고마워했다. 수화기 너머로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일 정도로 진심이 담긴 목소리였다.

“자세히 보아야 아름답다’는 말이 있는데, 도움의 손길도 깊은 이해와 진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죠.”

◇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을 위하여

2002년부터 2010년까지 담당했던 지방장애인기능경기대회도 잊을 수 없는 업무였다. 지방대회에서 1등을 하게 되면 전국대회에 출전하고, 전국대회에서 1등을 하게 되면 국제장애인올림픽대회에 국가대표로 나갈 수 있다. 장애인들에게는 큰 기회였다. 의욕은 넘쳤지만 당장 훈련 비용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비장애인기능경기대회와 비교해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어요. 그렇다고 그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죠. 이름난 명장들과 대학교수들을 찾아가 도와달라고 매달렸죠. 다행히 허락해 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2009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국제대회에 대구 선수가 6명이나 출전했다. 그해 우리나라가 금메달을 8개를 획득했는데, 그중 3개가 대구 선수들이 쓸어왔다. 그 외에도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획득해 대구 선수들은 전원 메달을 땄다. 우리나라가 국제장애인올림픽 4연패를 달성하는데 대구가 가장 큰 기여를 한 셈이었다.

“명장분들과 교수님들 덕분이었죠. 더 신났던 건, 기술을 지도한 명장들 중에 올림픽을 인연으로 가르친 선수를 정식 제자로 받아들이기도 했다는 거예요.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함께 도우며 살 수 있는 법을 터득한 거죠.”

현재 근무하고 있는 장애인보호작업장은 2018년 여름에 발령을 받았다. 정 원장은 “두 번째 올림픽”이라고 말했다.

“우리 작업장의 가장 큰 목표는 외부취업입니다. 비장애인들과 어울려 당당히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현재 작업장에는 포스트잇 포장, 안경케이스 포장작업, 자동차 부품의 소켓 끼우는 작업 등을 진행한다. 장애인 근로자 10명과 훈련생 20명의 인건비를 맞추기도 빠듯하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이곳을 디딤돌로 바깥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정 원장은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하면 장애를 인식하는 시간 자체가 줄어들 것”이라면서 “장애를 잊고 살아가는 것이 궁극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현재 작업장 운영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월세다. 1달에 200만 원을 낸다. 수익에 비해 부담이 되는 금액이다. 1인 1만원 후원으로 월세 일부를 충당하고는 있지만 기부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올림픽을 준비할 때처럼 지인들을 찾아다니면 ‘1만원 기부’를 부탁하고 있다. 힘들지만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정 원장은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는 흐르고 흘러 다시 초등학교 5학년 교실로 돌아왔다.

“저는 우리 사회가 그 초등학교 5학년 교실처럼 변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합니다. 개인용 화장실을 만들어준 담임선생님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어울려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저의 영원한 목표입니다. 연어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듯,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의 교실처럼 만들고 싶습니다. ”

신정미 객원기자(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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