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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옆엔 불법인 모텔, 어린이집 옆엔 즐비

입력
2019.04.02 04:40
수정
2019.04.02 10:3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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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기관 아닌 보육기관인 탓 ‘규제 사각’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유치원 옆 유흥업소는 법으로 금지된다. 그렇지만 어린이집 옆에는 얼마든지 들어설 수 있다. 유치원은 교육기관이라 ‘교육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해 주변 200m까지 각종 유해시설로부터 보호받지만, 어린이집은 보육기관이라는 이유로 법의 관련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자녀가 다니는 어린이집 주변에 즐비한 여관과 여인숙, 술집으로 속앓이를 하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다. 올해부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게 된 광주 동구의신경민(34)씨도 “어린이집 바로 옆에 모텔촌이 있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라면서 “똑같이 아이들을 위한 기관인데 유치원은 보호받고 어린이집은 나 몰라라 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1일 국회에 따르면 최근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은 어린이집의 입지조건을 법에 규정하는 내용의 영유아 보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자체장이 폐기물 처리시설이나 유흥업소가 어린이집 인근에 위치할 수 없게 어린이집이나 유해시설의 인허가를 제한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전혜숙 의원실에서는“현행 법에서는 시ㆍ도지사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장이 어린이집 주변의 유해시설을 규제하고 싶어도 근거가 없다”며 법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에 관련규정을 두고는 있으나, 규정의 구체성과 강제성이 부족해 현장에서의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울산 북구에서도 지난해 어린이집 근처에 모텔 건축이 시작되면서 이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공사금지가처분 신청까지 제출하는 등 관련 갈등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소재 한 어린이집 근처에 모텔이 즐비하다. 네이버 거리뷰 캡처
서울 영등포구 소재 한 어린이집 근처에 모텔이 즐비하다. 네이버 거리뷰 캡처

하지만 전국의 어린이집이 약 4만여곳으로 유치원(9,029곳)의 약 5배에 달하는 만큼 현실적인 어려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전국 수만 곳의 어린이집 근처에 위치한 유해시설을 몰아내거나 이들을 피해 어린이집을 이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한 국공립 어린이집도 주변 술집과 노래방 등을 피해 이전하려는 목적의 관련 예산을 확보해놓고도 대체 부지를 찾지 못해 이전에만 수년이 걸렸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관계자는“또 이미 관련 법이 있는 유치원, 학교 근처 유해시설조차 정부에서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2013년부터 지난해 6월 말까지 총 1,824건의 불법금지시설이 당국에 적발됐고, 이 같은 단속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유치원 반경 200m 안에서 운영 중인 유해업소는 전국적으로 200곳이 넘는다. 또 서너살 안팎의 영유아의 경우 상대적으로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출퇴근길에 아이를 맡겨야 하거나 야간에 일하는 입장에서는 접근성이 떨어지는 한적한 지역보다는 오히려 번화가가 낫다는 학부모들도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안병찬(38)씨는 “어린이집이 지하철역 근처에 있다 보니 주변에 유흥업소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은설 육아정책연구소 본부장은 “미국 등의 해외사례를 보더라도 어린이집 주변의 시설을 규제하고 있다”면서 “국내에서는 어린이집에 교육환경 보호구역과 같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면, 유해시설의 종류를 구체적으로 나눠 일부라도 법에 명시해 어린이들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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