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회장 지위는 유지… 이사회 참여 못할 뿐 경영 가능
자신 뜻 관철 가능한 구조… 시민단체 “주총 결정 무시” 반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주주들 뜻에 따라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사내이사직을 잃게 되면서 조 회장의 향후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당장 대한항공 측에서는 조 회장이 미등기임원 회장으로 경영에 관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시민단체들은 “주주총회 결정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재계와 주식 시장에서는 사내이사가 아니더라도 대한항공 경영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기 때문에 조 회장의 입지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진 않을 거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과 외국인 투자자를 비롯한 주주들은 기업 가치를 훼손하고 주주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던져 부결시켰다. 이에 따라 조 회장은 회사 주요 인사나 사업 등 경영 전반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이사회 참석 자체가 봉쇄되면서 외견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할 처지가 됐다.
하지만 주총 직후 대한항공은 “조 회장이 사내이사직을 상실한 것은 맞지만 경영권 박탈은 아니다”라며 “미등기임원 회장으로서 계속 경영을 할 수 있고 한진칼 대표이사로서도 대한항공에 대한 경영 참여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냈다. 대한항공 지분을 29.96% 갖고 있는 한진칼은 한진그룹 지주회사이고, 조 회장 등 특수관계인은 한진칼 지분 28.93%를 보유하고 있다. 대한항공에 지배력을 가진 한진그룹 회장으로서의 지위는 계속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재계에서도 조 회장이 미등기임원 회장으로 대한항공 경영에 관여하는 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 신세계 오너 일가와 이재현 CJ그룹 회장처럼 계열사를 진두지휘하면서 등기임원으로는 이름을 올리지 않은 오너 일가도 상당수다. 재계 관계자는 “등기이사(임원)는 이사회 구성원으로 기업 경영에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동시에 법적인 지위와 책임을 갖게 되는 것”이라며 “등기이사와 비등기이사의 차이는 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오너로서 이사회 논의와 결정을 보고 받는 식으로 경영 참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사회 구성도 조 회장이 계속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기존 사내이사 4명 가운데 조 회장은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장남인 조원태 대표이사 사장과 우기홍 대표이사, 이수근 부사장 등 기존 사내이사 3명의 자리는 그대로다. 안용석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등 사외이사 5명도 조 회장 측근으로 평가 받는 인사들이다. 조 회장이 장남인 조 사장을 앞세워 이사회 운영에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구조다.
주식 시장 반응도 비슷하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에 대한 간접적 영향력을 유지하는 게 가능하다“(대신증권), “주총 결과로 한진그룹 지배구조가 크게 바뀐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하나금융투자), “재무구조 개선 등 향후 성과가 가시화되기까지 긴 호흡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한국투자증권)는 등 조 회장의 대한항공 내 지배력이 여전하다는 증권사 보고서가 대거 발행됐다. 조 회장이 사내이사직을 박탈당한 27일 ‘오너 리스크’ 해소에 대한 기대감에 상승했던 대한항공 주가는 하루만에 5.27% 떨어진 3만1,450원에 거래를 마쳤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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