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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과로 사회에 제도화된 주민참여

입력
2019.03.29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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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은 도시공간의 주인이고, 해당 공간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앞으로 그 공간을 이용할 주체이다. 공간 조성에 주민이 참여하는 것은 주민의 권리이자, 해당 공간의 효율성을 높이는데도 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참여를 통해 마을에 더 많은 애정을 가질 수 있다. 주민참여는 이렇게 중요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우리 도시는 주민을 배제한 채 공간을 만들어 왔다.

우리나라 도시공간 조성에 본격적으로 주민참여가 적용된 것은 1998년 서울 사당동 양지공원 조성이 효시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 김성균 교수팀이 8차례의 주민참여 워크숍을 통해 공원을 조성했다.

이후 주민참여가 확산된 데에는 시민사회의 역할이 컸다. 걷고싶은도시만들기시민연대는 2002년부터 ‘주민참여 한평공원만들기’ 활동을 통해 동네에 버려져 있거나 효율이 떨어진 자투리 공간을 50여개의 작은 공원으로 조성하고, 놀이터 조성 과정에 주민참여를 도입해 8개 놀이터를 만들어 냈다. 서울그린트러스트는 ‘우리동네숲’ 조성과정을 주민과 함께 했다. 시민사회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공간 조성에 주민참여가 가능함을 알렸고, 많은 전문가와 행정이 합심하여 주민참여는 점점 제도화됐다. 하지만, 방향은 옳았으나, 속도가 너무 빨랐고, 일시에 확장됐다. 과로 사회에서 마을 일에 시간을 낼 수 있는 주민은 한정되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주민참여를 전제로 하는 각종 사업들이 동네에 뿌려졌다. 주민들이 참여하는 곳에 예산이 쓰인다. 제도화가 되면 시간이 없는 주민들에게도 참여는 일종의 의무가 된다. 물론 참여가 강제적이지는 않다. 마을의 놀이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직접적인 불이익이 가해지지 않는다. 참여는 선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의무에 따라붙는 단어는 권리다. 참여하지 않고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

주민참여가 제도화되기 전, 행정이 주민들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일처리를 했다면 그 결과는 행정의 책임이 된다. 하지만 주민참여의 방식으로 결정됐다면, 그 결과가 공정치 못하다 하더라도 그 책임은 참여하지 않은 사람에게 돌아간다.

애초에 참여가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애초에 참여하기 수월한 조건을 갖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들은 놀이터 만들기에 참여해 운동기구를 놔달라고 하고, 가로등 위치를 결정하고, 동네 자투리공간을 주차장으로 만든다. 그들은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종류의 주민참여 활동에 참여하며, 그 대가로 자신의 의견을 반영시킨다. 열심히 참여한 사람이 그만큼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정의로워 보인다. 하지만 주민참여로 많은 것들이 결정되는 순간에, 많은 사람들은 일을 하고 있거나, 어쩌다 생긴 시간을 힘겹게 보내고 있다. 반대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은 지역사회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자신만 열심히 시간을 내는 상황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도시, 마을의 변화는 사회의 변화와 함께 간다. 우리 사회의 모습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도시와 마을만 달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주민들이 주인 되는 마을을 꿈꾼다면, 그것이 가능한 사회구조를 만드는데 노력해야 한다. 과노동 상황을 해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참여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단,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직시해야 한다. 그 안에서 가능한 것부터 차근차근 해야 하며, 어디까지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해야 한다. 현실은 그대로 둔 채 어설픈 기술이 난무하고, 포장술이 발달하며, 판이 커지고 있다. 주민참여는 마을공동체의 이름으로, 더 나아가 도시재생의 이름으로 점점 덩치가 커지며 제도화되고 있다. 그렇게 주민참여가 좋지 않은 과정과 결과로 나타난다면, 어렵게 자란 주민참여라는 싹이 뿌리째 뽑힐 수도 있다.

최성용 도시생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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