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의 디지털영상저장장치(DVR)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DVR는 세월호 선내에 설치된 64대의 폐쇄회로(CC)TV에서 촬영된 영상을 모아둔 장치로, 참사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주요 증거로 꼽힌다.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ㆍ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28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해군이 2014년 6월 22일 수거했다고 한 DVR와 검찰이 확보한 DVR가 다른 것으로 의심되는 단서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해군 A 중사는 ‘2014년 6월 22일 오후 11시 20분쯤 선내 안내데스크에서 DVR를 확인하고, 케이블 커넥터의 나사를 푸는 방법으로 본체를 분리해 수거했다‘고 진술했다. 특조위는 이 진술이 당시 여러 영상과 맞지 않다고 보고 있다.
세월호 내 64개의 CCTV 케이블은 16개씩 커넥터에 모여 DVR 본체에 연결된다. A중사 진술대로 라면 DVR가 있던 안내데스크 부근에서 케이블과 커넥터가 모두 발견돼야 한다. 하지만 선체 인양 뒤 안내데스크 부근의 뻘을 제거하는 과정을 찍은 영상을 보면, 케이블만 있고 커넥터는 없었다는 게 특조위의 주장이다. 이어 A 중사는 ‘DVR를 쥔 채 선체 밖으로 나와 우현 외판에 올려놓았다‘고 진술했으나 관련 영상에서는 DVR가 보이지 않았다.
또 해군이 수거했다는DVR와 해경이 마대자루에 보관하다 나중에 검찰에 넘긴 DVR가 다르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해군이 DVR를 수거한 날 촬영된 영상에는 오른쪽 손잡이 안쪽의 고무패킹이 떨어져 있지만, 검찰이 확보한 DVR에는 고무패킹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특조위는 “DVR 전면의 열쇠구멍도 수중 촬영 영상에서는 수직 방향(잠금 상태)인데, 불과 35분 뒤에 촬영된 마대자루 촬영 영상에서는 수평 방향(잠금 해제)이었고 내부의 잠금 걸쇠가 부러진 것으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특조위가 DVR 문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든 것은 지난해 12월부터다. 2014년 8월 검찰이 DVR를 복원했을 때는 참사 발생 3분 전인 오전 8시46분까지의 영상만 있어 침몰 원인을 추론하거나 확인하기엔 부족했다. 하지만 일부 생존자와 세월호 직원 등은 세월호가 기울어져가던 오전 9시30분까지 3층 안내데스크에서 CCTV 영상을 봤다고 주장하면서 DVR가 조작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참사 발생 두 달이 지나서야 DVR가 수거됐다는 점도 의혹을 더 키웠다.
특조위는 이제까지 조사 내용을 토대로 DVR 조작 의혹에 대해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해군 등이 DVR를 미리 확보해 손 본 뒤 나중에 수거한 것처럼 위장했을 가능성 등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보고 있다. 박병우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국장은 “여러 의혹과 함께 DVR 저장 데이터에도 손 댄 흔적이 있는 지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특조위 발표를 지켜본 세월호참사 피해자가족협의회는 “경악을 넘어 분노에 치가 떨릴 지경”이라며 “특별수사단 설치를 통한 전면재수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해군은 “당시 모든 증거물은 현장에 입회한 관계기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즉시 해경으로 이관됐다”며 “DVR도 그 절차를 따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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