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집 ‘수탉 몬다의 여행’에는 같은 제목의 연작시 11편이 실려 있다. 이 시는 연작시 첫 편으로 수탉 몬다가 물컹팔랑 마을을 등지고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다. “소시지가 부들처럼”이나 “입이 무거운 펠리컨” 같은, 명쾌한 시적 재미가 있는 표현으로 알 수 있듯 물컹팔랑 마을은 꽤 흥미로운 공간이다. 이슬방울을 마시면 머릿속 생각이 나비처럼, 꽃으로 짠 조각보처럼, 거미줄처럼 보이는 마을이라니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하지만 수탉 몬다는 생각만 하며 살 수 없다고 결심한다. 생각은 시의 임무도 아니요, 어린이에게 유일하게 강요할 일은 아니라는 뜻일까.

몬다는 생각만으로 안온한 마을을 떠나 새 세상을 탐험한다. 튤립나무가 있는 무덤을 지나, 집들이 벌집처럼 매달려 있는 모도리알짬 마을로 갔다가, 멧새가 건네준 동화책속 휘뚜루마뚜루 마을로 들어간다. 연작시의 모험은 동화처럼 일관된 서사로 이어지지 않는다. 모도리알짬 마을을 보여주더니, 다음 시에서는 문득 거기 심고 싶은 나무를 노래한다. 연작시의 모티브는 연작시가 아닌, 이 시집의 다른 시와 연결되기도 한다. 연작시에서는 휘뚜루마뚜루 마을의 나무가 몽땅 베어졌다고 했는데, 그 때문인지 ‘전기톱 좀 빼앗아’에서는 벌목꾼들이 전기톱으로 자른 나무를 휘뚜루마뚜루 마을로 가져간다.

그러니 몬다의 여정은 뒤를 한 걸음 한 걸음씩 따라갈 수 없다. 돌풍으로 야산에 불시착하고, 잠에 취해 걷고, 정신없이 뛰는 몬다처럼 그저 온 몸을 내맡기고 휩쓸려갈 뿐이다. 애초에 몬다는 생각만 하다 죽을 순 없다고 떠나지 않았던가. 생각으로 모든 걸 밝혀내리란 생각은 금물.

연작시 마지막 편에서 몬다는 닭이 아닌 새가 되고 싶어 한다. “나의 조상은 적색들닭 나의 조상은 회색들닭 나의 조상은 녹색들닭 셋 중에 하나. 이제 나는 날고 싶다네. (…) 새가 날면 나도 날까? 내가 먼저 날아야 새도 날까? 그런데 내가 정말 새일까? 그럼, 그럼.”(‘수탉 몬다의 여행 11 - 멧새를 만나러 가는 길’) 몬다는 2년 만에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비로소 알게 됐지만 이건 여정의 흔한 결말이 아니다. 몬다는 원래 새였으니, 몬다의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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