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회장 대한항공 이사연임 부결 영향
대기업 총수들 사익편취등 스스로 피하고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에 촉각 곤두세울 전망
27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재선임안 부결에 국민연금의 반대표가 결정적 역할을 하면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 지침)활동의 영향력이 더 강력해질 전망이다.
재벌 총수가 경영권을 박탈당한 선례가 만들어진 만큼, 다른 대기업들도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조 회장이 실제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하리라 예상한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종이호랑이’로 불릴 만큼 그간 주총에서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투자 규모는 코스피ㆍ코스닥 시가총액의 7%(지난해 3월)에 달하지만 기업별 지분율은 높아야 10% 초반이어서 국민연금이 반대한 안건이 주총에서 부결된 경우가 드물었다. 지난해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던진 주총 안건 607개 중 실제로 부결된 경우는 7건(1.2%)뿐이었다. 재벌 총수의 재선임 안건에 대해서도 국민연금은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2011년),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2016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2016년) 등 여러 차례 반대표를 던졌지만 실제로 연임에 실패한 경우는 없었다.
여기에 지난달 국민연금 최종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 대한 이사직 해임제안 등 파장이 큰 주주권 행사는 미루고, 대한항공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대해서만 최소 수준으로 경영참여하기로 결정하면서 스튜어드십코드 활동의 동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당시 기금운영위는 일상적 경영참여인 이사연임 안건에 대한 찬반 입장 표시 역시 전문가 자문기구인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로 결정을 미뤘다.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에 경영에 참여할 경우, 자본시장법상 10%룰(단기매매차익 반환)의 적용을 받아 자칫 수십억원대의 단기이익을 토해낼 수도 있다는 점과, ‘연금 사회주의’라는 재계의 비판이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다.
하지만 조 회장 연임을 저지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어떤 결정을 하느냐가 소액주주는 물론, 주요 기관투자자들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신호가 되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의결권 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지분율 10% 이상이거나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가 넘는 기업에 대해서 국민연금이 의결권행사 사전공시를 시작한 만큼, 갈수록 시그널 효과가 강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엇보다 앞으로는 재벌 총수들 스스로 무분별한 사익추구를 자제하고,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경영을 펼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까진 국민연금 담당자가 만나자고 해도 재벌들이 코웃음 쳤지만 앞으로는 중점관리기업으로 선정되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해명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 교수는 “기관투자자들 역시 투자자들로부터 왜 국민연금과 다른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했는지 문의를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른바 연금 사회주의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기금위 구성상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탁자책임위가 검토한 사안이라도 최종 결정권은 기금위에 있다. 20명으로 구성된 기금위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고, 당연직 위원 4명 역시 정부 관련 부처 차관이 맡는다. 박 교수는 “해외 연기금들은 상설조직을 갖추고 독자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한다”면서 “기금위의 간섭을 끊고 수탁자책임위의 권환과 책임을 동시에 강화해 정부 개입 논란을 차단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