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서 안 된다”는 편견을 깨부수고 슈퍼히어로로 거듭난 영화 ‘캡틴 마블’에 530만 관객이 환호했다. 캡틴 마블은 스크린 밖 현실에도 존재한다. 성차별을 딛고 세상을 바꾼 두 실존인물의 삶이 영화로 만들어져 ‘캡틴 마블’보다 더 생생한 감동을 전한다. 승리ㆍ정준영 사태와 장자연 사건, 김학의 사건 등을 겪고 있는 최근 한국 사회에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여성 서사다.
28일 개봉하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는 법으로 성차별과 싸워온 미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86)의 발자취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1950년 긴즈버그가 하버드대학 로스쿨에 입학했을 때 교수들은 “남자들의 자리를 빼앗았다”며 여학생들을 비난했고 경비원들은 여학생의 도서관 출입을 막았다. 긴즈버그는 컬럼비아대학 로스쿨을 수석 졸업했음에도 여성ㆍ엄마ㆍ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로펌 입사를 번번이 거절당했다. 럿거스대학 로스쿨에서 ‘여성과 법’이라는 강의를 하면서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이 ‘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긴즈버그는 변호사로 성차별 소송을 도맡아 하면서 법을 바꿔가기 시작했다. 남성 공군에게는 지급된 주택 수당을 받지 못한 여성 공군의 소송 등 긴즈버그가 맡은 성차별 관련 대법원 소송 6건 중 5건이 승소했다. 편모가 받는 양육수당을 받지 못한 편부의 소송은 성차별이 남녀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사례였다.
긴즈버그는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지명으로 연방대법원 대법관에 임명된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이다. 긴즈버그는 보수화된 대법원의 판결에 반대 의견으로 맞서왔다. 동일 노동에 대한 남녀 동일 임금을 옹호하고, 출산에 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지지했다. 영화는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에 굴하지 않고 평생을 소수자와 함께 싸워 온 긴즈버그를 따라가며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제시한다.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우리 목을 밟은 발을 치워달라는 것뿐입니다.” 긴즈버그의 목소리가 긴 여운을 남긴다.
100여년 전 프랑스에도 시대를 앞서간 여성 예술인이 있었다. 20세기 초반 유명 작가이자 배우, 연극 연출가, 트렌드세터였던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1873~1954)다.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가 주연한 영화 ‘콜레트’(27일 개봉)는 여성의 이름으로 책조차 낼 수 없던 시대에 당당히 자신을 드러낸 여성예술인 콜레트의 목소리를 담았다. 콜레트는 출판업자인 남편의 권유로 자신의 추억을 담은 소설 ‘클로딘’ 시리즈를 남편 이름으로 발표한다. 이 소설은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주인공 클로딘의 이름을 딴 각종 상품들까지 화제를 모은다. 콜레트가 클로딘의 모티브가 됐다는 사실에 콜레트의 패션과 헤어스타일까지 유행할 정도였다.
‘클로딘’ 시리즈 판권을 빼앗기는 등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콜레트는 새로운 여성상을 자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돈벌이에만 이용하는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난다.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자신의 이름으로 소설을 써 출간한다. 콜레트의 소설 ‘지지’ ‘방황하는 여인’ ‘여명’ 등은 감각적인 묘사로 큰 사랑을 받았다. 시대가 강요하는 관습이나 역할을 거부하고 세상으로 당당히 나아간 콜레트의 삶은 그 자체로 드라마다. 콜레트는 여성으로는 처음 작가적 성취를 인정받으며 1945년 콩쿠르 아카데미 최초 여성 회원이 되었고, 이후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저널리스트로도 활약했다. 진취적인 여성상은 요즘 시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 개봉에 맞춰 콜레트의 대표작 ‘파리의 클로딘’(민음사)도 출간됐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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