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회장, 사내이사 연임 실패]
조원태 사장 체제 전환 전망 불구, 경영 차질 단기간에 극복 힘들 듯
대한항공선 “회장으로 경영 참여”… 시민단체 “주총 결과 무시하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7일 그룹 핵심계열사인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하면서 대한항공은 비상이 걸렸다. 당장 조 회장이 의장직을 맡고 있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6월 서울 연차총회 개최, 미국 델타항공과의 조인트벤처(JV)를 통한 미주-아시아 네트워크 확대, 동남아 중장거리 신규노선 확대 사업 등에 차질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경영 리더십 공백 불가피
대한항공은 이날 “조 회장이 사내이사직을 상실한 것은 맞지만 경영권 박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대한항공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사내이사의 권한만 없어졌을 뿐 그룹 회장으로서 경영 전반에 계속 관여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한항공 내부에서는 조 회장의 경영 공백 상황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6월 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개최되는 IATA 총회부터 차질을 빚게 됐다. IATA 총회는 전 세계 120개국 280개 항공사가 참여하는 항공업계 최대 규모 회의로, 글로벌 항공업계의 ‘유엔총회’라고 불린다. 지난해 IATA 총회 주관사로 선정된 대한항공은 이번 회의를 통해 인천공항의 글로벌 허브 공항으로서의 경쟁력을 부각하고 우리 항공산업의 위상을 높일 계획이었다. IATA는 국제선 항공 운임을 결정하고 조정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기도 하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 회장의 IATA 총회 의장직은 유지될 것”이라면서도 “조 회장이 주총에서 대한항공 주주들에게 불신임을 받으면서 IATA 내에서도 목소리를 높이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대한항공 내부에선 조 회장의 ‘리더십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조 회장은 그간 대한항공이 경영 위기를 맞을 때마다 글로벌 항공 동맹체제 구축, 미국 교통부의 반(反) 독점면제 권한 획득 등 선제적 조치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한항공은 올해 인천~보스턴, 인천~미니애폴리스 등 미주노선 취항을 통해 델타항공과의 조인트벤처 사업 안정화를 꾀할 예정이었지만, 이 사업을 주도한 조 회장이 물러나면서 당장 대한항공과 델타항공 간 유기적 협력을 이끌 리더가 없어진 상황이다.
조 회장의 퇴진으로 대한항공의 경영 리더십은 불가피하게 조원태 사장에게 넘겨졌다. 조 사장은 2016년 3월 대한항공 대표이사로 선임됐고, 2017년 사장으로 승진했다. 우기홍 부사장과 함께 공동대표 체제가 된다. 그러나 항공업계 관계자는 “조 회장은 지난 20년간 구축한 글로벌 인맥을 바탕으로 국제 사회에서 항공업계의 트렌드를 읽어왔고 이는 대한항공이 글로벌 항공사로 성장하는 바탕이 됐다”며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이를 단기간에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조 사장에겐 ‘인하대 부정 편입학과 졸업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한편 시민단체들은 조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서 대한항공 경영 전반에 관여할 것이라는 대한항공의 입장에 대해 “주총 결정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경제개혁연대는 “조 회장은 여전히 한진그룹의 총수이고 그 영향력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대한항공 경영권을 행사하려 한다면 이는 회사와 주주가치에 반하는 것”이라며 “조 회장은 미등기 임원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진그룹 전체에 대한 주주 입김 커질 듯
대한항공 뿐만 아니라 한진그룹 전체를 향한 주주들의 압박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29일 개최되는 한진칼 주총 결과가 주목된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주총에서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가 회사 또는 자회사 관련 배임ㆍ횡령의 죄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때 결원으로 본다’는 내용의 정관 변경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안건이 통과되면 횡령ㆍ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조 회장의 유죄가 확정될 경우 한진칼 이사직에서도 물러나게 된다.
한진칼의 2대 주주인 ‘강성부 펀드’(KCGI)는 이번 주총에서 한진그룹의 지배구조 개선과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한진그룹은 ‘한진칼→대한항공ㆍ한진(자회사)→손자회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다.
다만 한진칼 주총에서는 조 회장 측이 우세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조 회장의 한진칼 지분(28.7%)이 많은데다 법원이 6개월 미만 지분 소유를 이유로 KCGI의 주주제안권 자격을 인정하기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KCGI는 한진칼에 대한 펀드 기간을 14년으로 설정, 앞으로도 주총을 통해 한진칼을 압박해나간다는 계획이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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