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영화 감독이 아이유 각기 달리 해석해 단편 영화로
내달 공개될 넷플릭스 ‘페르소나’ 시리즈
“정의로운 아이유” “쓸쓸한 이지은”까지
불이 꺼진 주방.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소녀가 톱으로 나무의자의 다리를 비장하게 썬다. 살의가 가득한 공포영화가 따로 없다. 단편영화 ‘키스가 죄’에서 한나 역을 맡은 가수 겸 배우 아이유(이지은)는 친구의 아버지를 향해 복수의 날을 벼린다. 몸에 벌겋게 키스 자국을 남겼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를 두들겨 팬 것도 모자라 머리카락까지 자른 친구의 아버지를 골탕 먹이기 위해서다. 가부장적 사고에서 비롯될 수 있는 여성 폭력에 든 반기다.
아이유는 가녀린 몸과 달리 때론 당찼다. 그는 가수 데뷔 10년을 맞아 지난해 10월 낸 노래 ‘삐삐’에서 “이 선 넘으면 침범”이라며 도를 넘은 ‘옐로 저널리즘’을 꼬집었다. ‘키스가 죄’는 전고운 감독이 연출했다. 전 감독은 자본주의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 청춘의 모습을 담은 영화 ‘소공녀’로 지난해 영화계의 눈길을 끌었다.
전 감독은 27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아이유에 정의로운 면이 있는 것 같았다”며 “고등학교 때 내가 사랑했던 친구를 괴롭히던 폭력적인 아버지를 떠올리며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아이유는 영화에서 교복 대신 운동복만 입는다. 전 감독은 “여고를 나왔는데 학교에서 운동복만 입으면 가지 못할 곳이 없었던 용기가 떠올라 내린 선택”이라고 했다. 뿌리 깊은 가부장제를 흔들기란 쉽지 않다. 친구 아버지는 한나에게 “너처럼 잘 까불면 잘 다친다”고 비꼰다. 영화는 아이유의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2010년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노래 ‘좋은 날’)이라고 외쳐 남성들의 환호를 받았던 아이유는 여성 음악인으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역풍을 맞아왔다.
‘키스가 죄’는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업체(OTT) 넷플릭스가 제작한 단편영화 시리즈 ‘페르소나’의 일부다. ‘페르소나’는 아이유를 다룬 단편영화 4편으로 구성돼 있다. 전 감독을 비롯해 김종관, 이경미, 임필성 등 재능 있는 중견 감독들이 아이유를 각기 다른 시선으로 해석했다. 전사 같으면서도 쓸쓸하고 때론 속을 알 수 없는 가수 혹은 이지은의 모습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임 감독은 “아이유의 노래 ‘잼잼’(2017)에서 영감을 받아 영화 ‘썩지 않게 아주 오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영화 제목도 가사에서 따왔다. 영화는 비밀을 숨긴 여성과 평범한 남성의 하루를 통해 남녀 관계의 본질을 묻는다.
김 감독은 영화 ‘밤을 걷다’에서 아이유를 옛 연인의 꿈에 나온 외로운 여인으로 그린다. 그는 “아이유를 만났을 때 강인하게 사는 것 같으면서도 쓸쓸함이 보여 캐릭터에 녹였다”고 말했다.
이 감독이 만든 ‘러브세트’에서 아이유는 욕을 거침없이 내뱉는 당찬 소녀다. 아빠의 애인인 영어 선생님(배두나)에 지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테니스 경기를 하는 아이유의 모습엔 독기가 가득하다. 아이유는 “화는 나도 밖으로 분노를 터트리는 걸 사실 잘 못한다”며 “이 작품을 찍을 때 가장 어려웠다”며 웃었다.
‘페르소나’는 가수이자 연예기획사 미스틱스토리를 이끄는 윤종신이 기획했다. 다음달 5일 넷플릭스로 공개된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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