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우려 금할 수 없다” 기업들은 “다음 타깃 될라…”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로 27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20년간 유지해왔던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자 재계는 충격에 빠졌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주주들의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다음 타깃이 어디가 될지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즉각 기업활동 위축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전경련은 입장문을 내고 “그 동안 조 회장이 대한항공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노력해 왔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전경련은 특히 ‘연금사회주의’라는 표현까지 쓰며 국민연금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입장문에는 “국민연금이 이번 결과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되는데 사회적 논란을 이유로 연임 반대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국민연금이 민간기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게 된다는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있는 만큼 보다 신중했어야 했다”는 등 날 선 반응이 담겼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기업 경영권에 대한 평가는 부분적, 일시적 사정을 넘어 장기간의 경영성과와 관리 능력을 살펴봐야 하는데 국민연금이 조 회장 건을 심의한 과정을 보면 깊은 논의 없이 여론에 휩쓸려 결정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며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권을 흔드는 일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기업들도 국민연금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연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본격 도입으로 주총 분위기가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27일 주주총회를 연 SK그룹의 지주사 SK㈜ 역시 전날 국민연금이 최태원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을 반대하겠다고 나서면서 주총 내내 긴장감을 떨치지 못했다. 최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30.88%인 반면 국민연금의 지분은 8.37%에 불과해 최 회장 사내이사 연임에 제동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여느 때 주총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포스코나 GS건설, KT 등 국민연금이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곳은 물론이고, 국민연금이 2대 주주로 지분 13.2%를 보유한 대림산업은 이번 대한항공 주총 결과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기업 임원은 “이번 조 회장 사내이사 연임안이 부결되면서 국민연금이 실질적인 경영 감시자로서 실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확인된 셈”이라며 “국민연금이 과연 무리한 경영 개입이 아닌,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한 중립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의결권은 기업에 대한 경영 개입보다는 국민들이 맡긴 자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며 “오너 일가의 전횡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정부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국민연금이 객관적 기준 없이 특정 기업을 타깃으로 경영 개입을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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