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호의 실크로드 천일야화] <48>우유니 가는 길 
여행객들이 우유니 공항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직선거리로 어림잡아 4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면 될 거리였지만 우유니로 가는 직항은 없었다.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를 경유해 우유니로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라파스로 가는 항공편도 없었다. 세계적 관광지로 소문난 리우에서 인근 국가 수도로 가는 비행기가 없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울며 겨자먹기로 선택한 항로는 리우에서 페루 수도인 리마를 갔다가 라파스를 경유해 우유니로 가는 것이었다. 환승을 두 번이나 해야 겨우 우유니로 가는 난코스였다. 라탐항공을 타고 리우에서 리마까지 5시간 50분, 리마공항에서 환승 수속에 1시간 20분, 다시 라파스로 2시간 5분, 라파스공항에서 3시간 45분을 기다렸다가 비행기에 올라타면 45분 후면 우유니 공항에 도착하는 코스였다.

대서양 연안의 리우에서 비행기가 날아오른 시각은 오후 7시15분이었다. 이 비행기는 오후 11시5분 태평양 연안의 리마에 도착했다. 2시간의 시차가 있었다. 날짜변경선만 넘지 않는다면 지구 왼편 방향 비행은 시간 상으로는 남는 장사였다.

비행기 탑승객들이 리우데자네이루 공항에서 수속을 밟고 있다.

한국서부터 걱정거리가 하나 있었다. 리마공항 환승 시간이었다. 1시간 20분은 비행기에서 내려 보안검사를 받고 라파스행 비행기 탑승구를 찾아 올라타야 하는 시간으로는 부족했다. 리우를 출발한 비행기가 연착해도 문제고, 수속이 늦어져도 골치가 아픈 상황에 직면해야 한다. 넉넉하게 3시간 정도는 돼야 했다.

리마공항 안에서도 환승장 찾기가 쉽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하마터면 다른 정류장에서 내릴 뻔했다. 운전기사에게 재차 확인한 후 하차하니 컨테이너 형태의 이상한 구조물이 나타났다. 공항 미로찾기였다. 보안검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여유가 있긴 했지만 초조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수속을 마치고 라파스행 탑승구를 찾아가는데 15분은 걸렸다.

그 탑승구가 낯 익었다. 2016년 미국 LA공항에서 이란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다 환승시간을 놓쳐 10시간 뒤 비행기로 리마에 도착한 후 쿠스코행 비행기를 기다렸던 탑승구였다. 추억을 곱씹으며 라파스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던 중 걱정거리가 현실이 되어 버렸다.

한 어린이가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의 기념품 골목을 걷고 있다.

물을 한 병 사려고 크로스백을 뒤지는데 여권이 보이지 않았다. 지갑, 휴대폰과 함께 세트로 넣어둔 여권이 사라진 것이다. 머리 속이 하얗게 비었다. 잠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30분 조금 더 남았다. 여권을 찾지 못하면 대사관에서 재발급하는데 며칠이 걸리고, 이미 라파스행 비행기 수화물칸에 실려있는 짐도 찾기 쉽지 않은데다 우유니도 포기해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몇 초 순간에 머리를 스쳐갔다.

탑승구 찾느라고 공항 면세점을 들린 적은 없으니 여권을 꺼낸 곳은 보안검사장 뿐이었다. 왔던 길로 뛰었다. 입술이 바싹 타들어갔다. 거기라고 여권이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투시기 통과용 짐바구니에 여권이 남아있었다면 누가 그때 얘기를 했어도 했을 터다. 5분만에 보안검사장에 도착할 동안 심장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있을 거야, 아니 없을 수도 있어.’, ‘그래도 혹시, 아냐 포기하자.’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빠사뽀르떼?” “돈데 에스따 미 빠사뽀르떼?” 여권이 어딨냐고 다짜고짜 묻는 나에게 보안직원들은 모른다고 했다. 크로스백을 풀어놨던 짐바구니를 가리켰다. 그들은 바구니를 뒤져보더니 없다고 했다.

기댈 언덕이 사라졌다. 온 몸에 힘이 좍 빠졌다. 걱정이 현실이 되는 순간 한 보안직원이 내가 매고있던 크로스백을 가리키며 다시 뒤져보라고 했다. 크로스백에 없어서 찾으러 왔는데 다시 보라고? 당연히 없었다. 지갑과 휴대폰은 있는데 여권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크로스백에는 또 다른 공간도 있었다. 뒤져봤는지 아리송했다. 평소 여권 넣는 공간만 뒤져본 것 같기도 했다. 잡동사니를 집어넣는 공간의 지퍼를 열었더니 그토록 찾던 여권이 빛나고 있었다. 몇 만 촉광으로 눈부신 여권은 처음부터 내 몸에서 떨어진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여행객들이 우유니의 루나 살라다 호텔 로비에서 수속을 밟고 있다.

여권에게 인공지능이 달려있다면 내가 얼마나 한심했을까. 보안직원은 “그라시아스”를 연발하는 나에게 ‘거 봐라’하는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공항에 쥐구멍이 있었다면 서생원들과 합류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새벽 0시 25분에 리마를 출발해 1시간 시차가 있는 라파스에 3시30분에 도착했다. 여기선 짐까지 다 찾아 공항 대합실에 뻗치기를 해야 했다. 머리가 좀 어지러웠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선가 했더니 고산반응이 주범이었다. 라파스공항의 해발고도는 4,040m였다. 공항 바닥에 큰 대자로 뻗은 여행객도 있었다. 비행기는 다시 날아오른 지 1시간도 되지 않아 하늘에서 보는 우유니의 아침을 선물했다.

남미 답사에서 여권분실은 소동으로 끝났지만 노트북컴퓨터는 끝내 찾지 못했다. 귀국 전 상파울루 호텔에서 가방을 열어보니 회사가 지급한 노트북이 보이지 않았다. 우유니를 갔다가 돌아오는 중간 기착지인 라파스에서는 가방을 연 적이 없었다. 그러면 우유니 소금호텔 뿐이었다. 호텔에 전화했더니 노트북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결국 회사에 분실신고를 하고 남은 내구연한만큼 비용을 낸 후 새 노트북을 지급받았다.

하늘에서 바라 본 우유니의 루나 살라다 호텔 전경. 이곳에서 소금사막은 차량으로 30분 정도 거리다.

이과수에서는 신발도 놔두고 왔다. 어차피 물을 흠뻑 맞아야 하는 일정이다보니 캐주얼화를 벗어두고 샌들을 신고 다녔는데 짐쌀 때 호텔에 캐주얼화를 놔두고 왔다. 이과수 떠날 때까지는 몰랐고 브라질리아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야 알게됐다. 다행히 이과수 호텔에서 신발은 찾았지만 내가 갈수도 없고, 호텔 측이 한국에 국제우송으로 보내줄 경우 신발값보다 비쌀 것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그 신발은 이과수폭포 코스를 안내한 한국인 여행가이드 편으로 대구에서 인수받았다.

분실 3종 세트를 시간적으로 보면 신발이 1호, 여권이 2호, 노트북 컴퓨터가 3호였다. 신발과 여권은 찾았고, 노트북은 지구 반대편에서 잘 작동되고 있을 것이다.

글ᆞ사진=전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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