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사회부 이성택 기자
2월 19일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노사정 합의의 막후 주역은 정치권이었다.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가 지난해 11월 탄력근로제 확대에 합의한 이후 정치권은 여야 가리지 않고 노동계에 합의를 종용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노사정이 합의를 못 해도 3월 국회에서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을 처리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이는 탄력근로제 논의를 피하고 싶어했던 한국노총을 협상 테이블에 불러 들이는 압박이 됐다.
탄력근로제가 노동계가 ‘피하고 싶은 잔’이었다면, 해고자ㆍ실직자ㆍ교사 등의 노조 할 권리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은 경영계가 꺼리는 의제이다. 실제로 ILO 협약 비준 문제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8개월째 지지부진하다. 경영계가 대화를 사실상 보이콧하고 있어서라는 게 중론이다. ILO 협약 비준 문제에 정치권이 손을 놓자 경영계가 버티기 작전을 펴는 것으로 보인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지난 11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고용안전망 확충과 쉬운 해고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고, 대기업ㆍ공공부문 노조가 3~5년간 임금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등 민감한 노동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소신을 밝혔다. 반면 ILO 협약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았다.
정치권이 이를 남의 일처럼 외면하는 건 직무유기다. 이명박 정부는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며 EU에 ILO 협약 비준을 약속했는데, 2011년 이런 협상결과를 비준 동의 해준 곳이 바로 국회였기 때문이다. ILO 협약을 비준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한데 이는 국회의 몫이다.
EU는 한국 정부가 ILO 협약 비준 약속을 지키지 않자 지난해 12월부터 분쟁해결절차에 들어갔다. 1단계 절차가 성과 없이 끝났고, 내달 9일부터 마지막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우리 정부에 통보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5개월 남짓한 마지막 절차가 종료되기 전까지 한국이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으면 EU로부터 통상 등에서 직ㆍ간접적인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만에 하나 이로 인해 기업과 소비자가 피해를 입게 되면 정치권은 누구를 탓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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