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청문회’로 변질된 국토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자질 검증보단 지역민원 더 읍소
“후보자가 김포한강선(5호선 연장)을 해준다고 하니까 질의를 여기서 끝내겠다.”(홍철호 자유한국당 의원)
장관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인사청문회가 ‘민원청문회’로 변질되고 있다. 지난 25일 국회 국토교통위에서 진행된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송곳 검증을 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후보자를 상대로 지역구 숙원사업 추진 약속을 받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던 탓이다.
이날 오후 11시까지 진행된 최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의 시작은 ‘꼼수 증여’ ‘똘똘한 3채 보유’에 대한 검증인 듯 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지역구 민원 챙기기’로 분위기가 흘렀다. 국토부 수장으로 부적절한 부동산 투기, 다주택 보유 의혹에 낙마를 걱정해야 할 최 후보자가 이날 가장 많이 한 답변은 “죄송하다”가 아닌 “장관이 되면 잘 챙겨보겠다”일 정도였다.
경기 김포을이 지역구인 홍 의원은 후보자로부터 “김포한강선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받아냈고 이용호(전북 남원ㆍ임실ㆍ순창) 무소속 의원은 청문회 도중에 “장관 후보자로부터 ‘지리산 친환경 전기열차’ 적극 검토를 약속 받았다”는 보도자료까지 냈다.
지역구 민원 챙기기는 여야를 가리지 않았고, 특히 언론 주목도가 덜한 저녁 시간에 질의가 집중됐다. 김철민(경기 안산상록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김현미 현 국토부 장관이 신안산선을 올 9월 착공을 목표로 추진한다고 했는데 차질이 없느냐”며 “환경평가단계에서 착공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국토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현재(경기 하남) 한국당 의원은 지하철 9호선의 하남 연장 사업이 지지부진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같은 당 민경욱(인천 연수을) 의원은 “후보자는 제가 워싱턴특파원 시절 대사관에 있어서 잘 아는 사이인데 심하게 질문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면서도 나중에는 인천 송도에서 서울 청량리를 잇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B노선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의 조속한 추진을 요구했다.
최 후보자가 이미 장관이 된 듯한 분위기에서 청문회가 진행되자 보다 못한 이은권 한국당 의원이 “지금 (후보자를 상대로) 청문회를 하는 것인지, (장관을 대상으로) 정책 질의를 하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라며 “장관 자질이 있느냐, 없느냐를 지켜보는 자리에서 지역 민원을 부탁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지적을 의식해서인지 순탄하게 처리될 것으로 예상된 최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은 26일 불발됐다. 한국당이 보고서 채택은 힘들다며 이날 회의를 연기했기 때문이다. 실제 전날 청문회에서 소속 의원들이 검증보다는 지역구 민원 해결에 주력한 것이 알려지면서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이를 크게 질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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