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와 발렌티노의 컬래버레이션. 발렌티노의 영문 앞글자 'V'를 딴 무늬가 새겨져 있다. 언더커버 인스타그램 캡처

올해 초 열렸던 파리 2019 FW 남성복 패션위크에서 꽤 재미있는 컬래버레이션(협업) 작업이 등장했다. 발렌티노와 언더커버의 컬렉션 양쪽에 똑같은 프린트가 등장한 거다. 물론 각각의 컬렉션 성격에 따라 콘셉트가 다르지만 발렌티노의 컬렉션에서 언더커버의 로고를, 언더커버의 컬렉션에서 발렌티노의 로고를 볼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가 성립된 계기를 잠깐 들여다 보자. 지난해 발렌티노의 피어파올로 피치올리와 언더커버의 타카하시 준이 만나 협업을 결정했고 함께 옷 위에 그려 넣을 프린트를 만들었다. 이 프린트는 미국의 추리 소설 작가 에드거 앨런 포를 테마로 시간 여행 슬로건이나 우주선, 해골 등의 아트워크로 되어 있다. 여기에 ‘VALENTINO UNDERCOVER’ 혹은 ‘VU’ 등 로고를 적어 넣었다. 이런 결과로 같은 프린트가 양쪽 컬렉션에 모두 등장하게 된 거다.

이와 비슷한 프로젝트로 더 장기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몽클레르의 지니어스 시리즈가 있다. 고급 패딩으로 유명한 몽클레르는 “하나의 하우스, 다양한 목소리”라는 주제로 지니어스라는 프로젝트를 2018년에 시작했다. 피어파올로 피치올리는 여기에도 참여하는데 이외에도 리차드 퀸, 후지와라 히로시, 시몬 로샤와 크레이그 그린, 매튜 윌리엄스 등 여러 디자이너들이 몽클레르의 패딩을 응용하고 변주해 각자의 방식으로 컬렉션을 선보인다. 올해 2시즌 째에 접어들었는데, 우선 컬렉션으로 함께 선보이고 매달 차례대로 출시하는 형태다.

패션 브랜드들의 공동 작업이 아주 흔해진 세상이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이런 협업은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다. 협업은 보통 자기에게 없는 걸 보충하는 방향으로 이뤄진다. 이는 이미지의 문제일 수도 있고 경제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언더커버와 발렌티노의 컬래버레이션. 발렌티노 인스타그램 캡처

협업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는 H&M과 칼 라거펠트, 유니클로와 질 샌더의 컬렉션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패셔너블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금방 입고 버리는 싸구려 옷이라는 한계를 대형 디자이너의 참여로 쇄신시키려고 했고 결과적으로는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구찌가 최근 트렌디한 젊은 일러스트와 작업하며 티셔츠 프린트나 구찌 아트월 같은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구찌라는 이름에서 풍기는 고전적 분위기를 보다 젊고 활발한 느낌으로 바꿔내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최근 샤넬은 뮤지션이자 BBC 등의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패럴 윌리엄스와 협업 컬렉션을 발표했는데 이 컬렉션 역시 기존 샤넬이 내는 분위기와는 상당히 다른 스트리트 풍의 분위기가 난다.

다만 발렌티노와 언더커버, 몽클레르의 지니어스 프로젝트는 이런 보충과는 성격이 다르다. 정기적으로 컬렉션을 선보이는 하이 패션 디자이너 브랜드라면 기본적으로 다른 브랜드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을 선보이는 걸 목표로 하는 법이다. 유행에 좌우되기 보다는 세상의 큰 흐름 속에서 자기들만이 할 수 있는 특유의 세계를 튼튼히 구축해 가며 그걸 매력으로 구매자를 끌어들인다.

최근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협업 작업들은 디자이너나 브랜드 혼자 작업할 수 있는 한계를 명확하게 직시하고 비슷한 성격을 가진 디자이너들끼리 함께 그 범위를 뛰어넘고 확장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발렌티노의 피어파올로 피치올리는 이 작업에 대해 “이건 소셜 실험이다!”라고 말했는데 매우 정확한 표현이다. 물론 이런 실험은 각자 브랜드의 이미지를 희석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이 패션이라는 이 극한 경쟁의 거친 마켓은 모두에게 이전의 관념에 얽매이지 말고, 보다 자유롭게 사고를 확장시키고, 가능한 방법을 모두 동원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지방시의 모델이 된 도나텔라 베르사체. 지방시 홈페이지 캡처

2015년에 지방시에 있던 리카르도 티시가 광고 모델로 도나텔라 베르사체를 기용한 적이 있다. 지방시 매장에 베르사체 디자이너의 사진이 걸려 있는 기묘한 모습을 보면서 패션 세계에 별의 별 일이 다 생기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불과 몇 년 만에 협업은 이렇게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패션의 미래를 결정하는 건 결국 한 없는 다양성의 포섭이고 그렇게 새로운 모습을 개척해 나아간다. 이런 일들 덕에 패션이 항상 즐겁고 흥미롭게 유지될 수 있는 것 아닐까.

패션칼럼니스트

※패션의 첨단과 이면을 부지런한 시선으로 들여다 본 <한국일보>의 ‘박세진의 입기, 읽기’ 연재를 오늘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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