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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실의 역사 속 와인] 국회의사당 준공 때, 와인 72병 앞마당에 묻은 사연

입력
2019.03.27 04: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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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매주 수요일 <한국일보>에 찾아 옵니다. 2018년 한국소믈리에대회 어드바이저부문 우승자인 시대의창 출판사 김성실 대표가 글을 씁니다.

청자 상감포도동자문 매병. 한국일보 자료사진
청자 상감포도동자문 매병. 한국일보 자료사진

얼마 전 ‘간송특별전’을 관람하러 갔을 때다. 유리관 안에 전시된 고려청자 한 점이 발길을 멈추게 했다. 13세기에 만들어진 ‘청자 상감포도동자문 매병’이었다. 매끈하고 둥근 청자 몸체에 ‘포도밭’에서 뛰어 노는 동자의 형상을 상감했다고 한다. 포도밭이라니, 그 앞에서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생각에 잠겼다. ‘도자기에 포도가 등장할 정도라면 어쩌면 고려 때는 와인을 빚지 않았을까? 그런데 와인은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과거 사람들은 와인을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로 여긴 듯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디오니소스는 포도나무 재배법과 와인 양조법을 터득하여 이를 인간에게 전파하고 포도나무와 와인의 신이 된다. 게다가 플라톤도 그렇게 말한 바 있으니, 과연 와인은 신이 내린 선물일까.

성경에는 최초로 와인을 만든 사람을 노아로 기록하고 있다. 창세기 9장을 보면, 대홍수가 끝날 즈음 아라라트 산에 노아의 방주가 멈춘다. 노아는 그곳에서 포도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마시고 취했다고 한다.

조지아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와인 토기 모습. 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조지아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와인 토기 모습. 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와인의 기원을 밝히고자 고고학자, 사학자 등 여러 전문가가 부단히 노력해 왔다. 이들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있는 조지아에서 와인이 탄생했다고 추정한다. 8,000년 전 양조용 포도씨앗과 와인을 만들어 보관하던 토기가 2017년 조지아에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은 노아의 방주가 멈춘 아라라트 산과 지리적으로 가깝다. 그렇다면 와인을 처음 만든 사람은 노아일까.

사실, 와인은 ‘우연히’ 발견됐다고 본다. 과일, 특히 포도는 곡물과는 다르게 달콤한 과즙에 자연 효모가 모여들면서 자연발효가 일어난다. 아마 누군가가 자연발효된 포도즙을 우연히 발견했을 테고, 그것이 지금의 와인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아무튼, 서아시아의 작은 지방 조지아에서 탄생한 와인이 지금은 전 세계인이 즐기는 음료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선 언제부터 와인을 만들었을까. 삼국시대 즈음 포도나무가 들어왔다고 추정하지만, 기록이 없어 도입된 시기도, 품종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일찌감치 와인 맛을 본 우리 선조는 제법 여럿 있었다.

고려 충렬왕은 장인인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가 보낸 포도주를 맛보았고, 조선 인조 14년에는 호조판서 김세렴이 대마도에서 대마도주와 레드와인을 마셨다고 한다. ‘하멜표류기’에는 이런 내용도 나온다. 1653년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하멜 일행은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류했다. 이들은 조선 사람들의 환심을 사서 위기를 넘기고자 난파선에서 밀려온 붉은 포도주와 은잔, 쌍안경을 관원들에게 가져갔다. 하멜은 이렇게 기록했다. “그들은 포도주 맛을 보더니만 아주 맘에 들어 하면서 많이 마셨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은잔도 돌려주고 텐트까지 바래다주었다.” 관원들은 생전 처음 맛본 서양의 붉은 술에 반했음이 틀림없다. 하멜은 그 붉은 포도주는 스페인산이었다고 기록해놓았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 해태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해태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럼,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상업용 와인은 무엇일까. 놀랍게도(적어도 나에겐) 모두가 떠올렸을 마주앙이 아니다. 1974년 해태주조에서 만든 노블와인 3종(노블로제, 노블클래식, 노블스페셜)이다. 노블와인과 관련해 ‘해태삼십년사’(1976)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다. 1975년 국회의사당이 준공될 때 그 자리에 화기(火氣)가 넘친다는 풍수지리학자들의 조언이 있어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 있는 해태상을 해태가 3,000만 원을 들여 조각해 국회사무처에 기증”했다고 한다. 당시 해태상을 설치할 때 해태주조의 노블와인 백포도주를 해태상 기초 10m 아래 36병씩 모두 72병을 묻었다. 해태가 화기를 쫓는 전설의 동물이고 백포도주 역시 화기를 삼키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백포도주를 준공 100년 뒤인 2075년에 개봉한다고 한다. 앞으로 56년 남았는데, 화기를 제아무리 잘 막는다지만, 국회를 향한 국민의 화기를 너무 많이 삼킨 백포도주가 상하지 않기를.

해태삼십년사에 수록된 해태주조 노블와인 3종. 해태삽십년사 캡처
해태삼십년사에 수록된 해태주조 노블와인 3종. 해태삽십년사 캡처

시대의창 출판사 대표∙와인 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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