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연락사무소 철수 통보 관련 “한미동맹 균열 내보겠다는 의도”
북한이 최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일방 철수한 것에 대해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는 “한국 정부를 다시 압박해 한미동맹에 균열을 내보겠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태 전 공사는 2차 북미 정상회담 후 강경 노선을 걷고 있는 북측이 한동안 미국, 남측과 냉각기를 이어갈 것이란 관측도 내놓았다.
태 전 공사는 25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지난 20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이끄는 통일전선사업부가 개성 연락사무소 철수를 상부에 제안한 다음 이틀 후인 22일 북측이 이를 행동에 옮겼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밝혔다. 태 전 공사는 “통전부는 연락사무소에서 철수함으로써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관련 대북 제재를 풀지 못하고 있는 한국 정부를 압박하겠다는 내용을 주보(주간보고)로 올렸을 것”이라며 “이를 통해 한미동맹에 균열을 낸다는 구상인 듯하다”고 설명했다. 연락사무소 채널 단절에 당황한 우리 정부가 미측에 북미 중재안으로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경협을 무리하게 설득, 미국과 긴장을 빚게 되는 시나리오를 노리고 철수를 단행했을 것이란 지적이다.
태 전 공사는 북측이 ‘포스트 하노이’ 전략도 큰 틀에서 정립한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태 전 공사는 “(북측은) 핵ㆍ미사일 실험 재개 같은 물리적 행동은 자제하면서도 미국, 한국과의 관계는 한동안 냉각상태를 유지한 채 기싸움을 벌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접근을 눈에 뜨이게 강화하여 대북 제재에 파열구를 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고 봤다. 북측이 당분간 미국, 한국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진 않겠지만, 자신들의 안전판 역할을 할 중국과 러시아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핵ㆍ미사일 실험만큼은 재개하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이 임박한 상황에서 북측이 미사일 발사 등 악수를 두진 않을 것이라는 게 태 전 공사의 예측이다. 앞서 19~23일(현지시간) 김 위원장의 의전을 담당하는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하면서 김 위원장이 이르면 내달 러시아를 찾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태 전 공사는 지난달 22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북한 대사관에서 일어난 괴한 난입 사건에 대한 분석도 내놓았다. 그는 당시 대사관에 침입해 직원들을 결박한 뒤 컴퓨터와 휴대폰 등을 빼앗았던 괴한이 평양발 전보의 암호를 해독하는 특수 컴퓨터를 탈취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태 전 공사는 “북한 대사관에서 사람 목숨보다 귀중한 것이 평양과 대사관이 주고 받는 전보문의 암호를 해독하는 ‘변신용 컴퓨터’”라며 “북한이 한 달 째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를 강탈 당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변신용 컴퓨터’가 괴한을 통해 미 연방수사국(FBI)에 넘어갔을 경우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평양과 북한 재외공관 사이 암호통신을 중단했을 것이며 최근 중국, 러시아, 미국 뉴욕주재 대사들을 평양으로 소환한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일 수 있다고 추론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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