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에는 같은 단어인데도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적당히’라는 부사는 “소금을 적당히 넣어 간을 맞추었다.”, “운동을 적당히 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의 예처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대답을 적당히 얼버무렸다.”,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갔다.”와 같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적당히’라는 단어가 ‘정도에 알맞게’라는 뜻으로 사용되면서 동시에 엇비슷하거나 부정하게 잔꾀를 부리는 식의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요령’이라는 명사 역시 “화재가 났을 때 대처하는 요령을 교육 받았다.”, “상대와 대화할 때도 요령이 있다.”의 예처럼 사용되기도 하고 “열심히 일하지 않고 요령을 부리면 금세 표시가 난다.”, “그는 순박해서 요령을 피울 줄 모른다.”와 같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요령’이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이치’의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고 ‘적당히 해 넘기는 잔꾀’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외에 ‘순진하다’라는 형용사도 “그의 순진하고 착한 마음씨에 반해 결혼하기로 했다.”, “아이의 순진한 미소가 할머니를 웃음 짓게 했다.”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그 사람 말을 믿다니, 너도 참 순진하구나.”, “그는 철이 없고 순진해서 세상 물정을 모른다.”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순진하다’가 ‘마음이 꾸밈이 없고 순박하다’의 의미와 함께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하다’의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같은 단어라도 말의 맥락이나 화자의 발화 의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지철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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