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적 대화, 판단 사라진 우리 사회
정파성이 옳고 그름의 유일한 기준돼
비판적 지성과 성찰 서둘러 회복해야

역사는 2010년대의 한국을 뭐라고 기억할 것인가? 우선 역사적인 촛불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촛불이 2010년대 전체를 특징지우는 것이라고 보기는 그렇다. 그럼 무엇일까? 이 시기는 이명박, 박근혜로부터 촛불, 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는 기간이라 하나로 특징 짓기가 쉽지 않다. 이 시기를 관통하는 특징은 정보화와 SNS사회 등을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이와 관련이 있지만, ‘반지성’이 이 시기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그리고 현재의 흐름이 계속 된다면, 당분간 우리 사회를 특징지울 핵심적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몇 년전 각 분야의 대학 동기들이 모인 적이 있다. 식사 중 사회적 쟁점을 가지고 토론이벌어지고 격론으로 이어졌다. 그러자 한 친구가 충격적인 말을 하는 것이었다. “요즘은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저 친구가 왜 저런 이야기를 하지, 고향이 어디고, 누구 편이지를 생각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받은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내용도 충격적이지만 그 말이 맞는 것 같고 부정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옳고 그름에 대한 비판적 논쟁과 비판적 판단이 실종되고 있다. 그저 “누구 편인가”하는 정파성이 옳고 그름의 가장 중요한 기준, 아니 유일한 기준이 되고 있다. 한 마디로, 우리 사회는 지성이 실종된 ‘반지성의 사회’가 되고 있다. 아니 이미 되어 버린 것 같다. 삼엄한 군사독재 시대에도, 치열한 정치적 대립 속에서도, 그래도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이라는 최소한의 판단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그것이 실종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5∙18의 북한특공대 주도설이다. 전두환 정권은 자신들이 5∙18 민중항쟁을 촉발시킨 당사자들이었고 마음만 먹으면 지하실에서 간첩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었고 (아니 실제로 만들어냈고) 모든 언론을 장악하고 있었던 무소불위의 독재였다. 그러나 이 정권 조차도 5∙18이 북한 특공대가 주도한 것이라는 주장은 하지 않았다. 광주에서 수많은 양민을 학살한 당사자들도 북한특공대 주도설이란 주장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능과 지성은 갖고 있었다. 헌데 이제는 이를 국회에서까지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무뇌 인간’들이 존재할 뿐 아니라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이들을 오히려 ‘용기있는 민주투사’로 대접을 하고 있고 이를 믿고 열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저 “우리 편이 주장하니, ‘적’이 나쁜 놈들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니, 맞다”는 것이다. 유치원에 대한 정부지원금 사용 투명화를 강화하자 한유총은 “유아교육을 국가가 책임지면 공산주의“라고 주장했다. 한유총이 바라는 것은 국가가 유치원에 지원해 주고 있는 보조금을 다 중단해, 공산주의를 벗어나는 것인가? 웃기는 이야기다.

‘민주화진영’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똑같은 일도 박근혜가 할 때는 반민주적 폭거라고 거품을 물던 사람들도 문재인 정부가 하면 침묵하거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고 옹호하고 나선다. 지성은 사라지고 “내 편이냐, 아니냐”는 정파만 남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20대 남성들의 지지율 하락을 둘러싼 논쟁도 마찬가지다. 20대가 교육받은 이명박, 박근혜 때 “제대로 된 교육이 됐을까, 이런 생각을 먼저 한다”는 발언이 보여주듯이, 설훈 의원 등 여권은 비판적 지성을 가지고 촛불혁명과 문재인 정부의 집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는 20대의 절망에 눈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눈 먼 정파성으로 전 정권 탓만 하고 있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20대 남자들만 아니라 20대 여성들도 박근혜 시대에 반공교육을 받았을 텐데, 왜 남성에게서만 지지율이 떨어진 것일까? 결국 ‘내 편, 적의 편’이라는 정파성이 지성적 판단을 마비시켰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파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비판적 지성을 회복해야 한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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