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강사ㆍ배달업체 배달원ㆍ문화센터 강사ㆍ플랫폼 노동자…
노동자도 아닌 개인사업자도 아닌 새로운 유형의 근로자들
특수고용직으로 분류 안돼 ‘차별’… 같은 일 해도 계약 따라 지위 갈려
사회가 다변화하고 기술 발달로 새로운 노동 형태가 확산되면서 노동자도 아니고, 개인 사업자도 아닌 새로운 유형의 특수형태근로종사(특고 노동자)가 55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처음으로 파악됐다. 보험설계사나 학습지교사 같은 전통적 의미의 특고 노동자는 산재보험이라도 적용 받지만 주로 방과 후 강사나 문화센터 강사, 플랫폼 노동자(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건당 보수를 받는 음식배달, 퀵서비스 등의 종사자) 등 ‘신(新) 특고 노동자’는 이마저도 제외돼 보호가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24일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이 공동 조사한 ‘특수형태 근로종사자의 규모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기존의 특고 노동자보다 종속성이 약하지만 1인 자영업자나 프리랜서로 보기 어려운 신 특고 노동자는 55만335명이다. 기존에 학계에서는 △점포가 없음 △보수를 주로 회사가 정함 △업무지시를 일부라도 받음 △출ㆍ퇴근 시간이 일부라도 정해져 있음 등 4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특고노동자로 봤다. 하지만 신 특고 노동자는 이 중 1가지 이상 해당하지 않더라도, 노동자와 개인사업자에 모두 해당되지 않는다고 간주되는 유형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들을 ‘하이브리드 유형’이라고 칭한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가장 대표적인 신 특고 노동자로 방과 후 강사를 지목했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강의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1인 자영업자(프리랜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5년째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강사로 컴퓨터 과목을 가르치는 임아영(30대ㆍ가명)씨의 사례를 보자. 임씨는 매년 12월이면 각 학교를 찾아 다니며 면접을 봐야 한다. 방과 후 강사는 대개 1년 단위로 수업 계약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임씨가 받는 강사료는 자녀를 맡기는 학부모들이 지불하지만, 강의 계약은 학교와 한다. 최근 들어서는 학교가 전문 강사 위탁업체에 방과 후 수업을 위탁 운영해 학교가 아닌 업체와 계약을 맺는 경우가 더 많다. 임씨는 현재 총 4개 수업을 진행하는데 1개는 학교와 직접 계약, 3개는 위탁 계약을 했다. 임씨는 “학교 입장에선 방과 후 학교 수업 자체가 정규수업이 아닌 가욋일이다 보니 행정 편의를 명분으로 위탁업체를 쓰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강의 계약 형태는 달라도 방과 후 강사에 대한 업무지시는 학교가 직ㆍ간접적으로 한다. 학교와 직접 계약한 경우는 각 학교의 방과 후 담당 부장 교사가 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단체 채팅방을 통해 하지만, 위탁업체와 계약한 경우는 위탁업체의 실장이나 코디네이터가 학교 측의 지시(시간표 수정ㆍ수업일지 작성 등)를 전달하고 수업 과정에 관여하는 식이다.
임씨처럼 위탁업체를 통해 일자리를 얻은 방과 후 강사는 학교에서 일하지만, 학교로부터 직접적인 업무지시를 받지 않아(‘업무지시를 일부라도 받음’에 해당되지 않음) 전통적인 특고 노동자로 보기는 애매하다. 그렇다고 자영업자로 보기도 어렵다. 정 부연구위원은 “신 특고 노동자는 똑같은 직업을 갖고 있어도 계약 관계에 따라 어떤 경우는 종속성이 강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노동자가 재량권을 조금 더 갖고 있기도 한다”며 "경계선 상에 있기 때문에 노동계는 특고 노동자, 경영계는 프리랜서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신 특고 노동자들의 근로 여건이 기존 특고 노동자에 비해서도 열악하다는 점이다. 김경희 방과후강사노조 위원장은 “정부가 학습지 교사나 보험설계사는 고용보험 가입을 의무화 하거나 사용주가 국민연금의 절반을 부담하도록 제도를 개선한다고 했지만, 비슷한 처지의 방과 후 강사는 제외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원호 고용부 고용보험기획과장은 “현재 고용보험 가입은 1차적으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제125조) 특고 노동자로 분류된 대상(보험설계사, 골프장 캐디, 학습지 교사, 레미콘 기사 등 9개 직종)부터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고 노동자 범주 안에서도 고용 형태가 다양해 보편적 보호 근거를 제도화하기 어렵다면 현실적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 부연구위원은 “전통적인 특고 노동자는 노동권 보호 필요성에 공감대가 있지만 신 특고 노동자는 어느 정도 보호해야 할지 논의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가령 신 특고 노동자는 고용주가 불분명해 고용보험 가입이 어렵다면 산재보험 가입부터 허용해주는 등 보호 범위를 차등화해 넓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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