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최근 열린 세계대회 결승에서 잇따라 준우승에 그쳐
이달 열렸던 ‘세계월드바둑챔피언십 2019’에서도 4강서 탈락…아쉬움 더해
실수 줄이고 평정심 갖는 게 진정한 세계 1인자로 올라서는 지름길로 지적
모든 프로바둑 기사들의 최종 목표는 ‘세계대회 우승’이다. 월등한 자국내외 성적도 주요 세계대회 우승 타이틀과 비교하긴 어렵다는 게 바둑계의 속설이다. 세계대회 우승컵 보유자가 ‘현재권력’으로 각인되는 이유다.
신진서(19) 9단은 자타공인의 ‘미래권력’으로 통한다. ‘밀레니엄 둥이’(2000년 출생)인 신진서 9단은 국내외 또래 선수들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인다. 영재 입단(2012년)으로 프로바둑계에 들어선 신진서 9단은 ‘2015 렛츠런파크배 오픈토너먼트’(우승상금 8,000만원)와 ‘2018 GS칼텍스배 프로기전’(7,000만원), ‘2018 JTBC챌린지매치 4차대회’(1,500만원) 등에서 우승, 일찍부터 가파른 성장세를 보여왔다. 통산 485전 349승 1무 135패(승률 72.11%)를 기록 중인 신진서 9단의 3월 기준 국내 랭킹은 2위로, 현재 1위인 박정환(26) 9단과 지난해 말부터 지존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합 중이다. 신진서 9단은 5년 가까이 국내 바둑계에서 독재권력(2014년1월~2018년10월)을 행사해 온 박정환 9단에겐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올라선 셈이다.
특히 비공식 세계 바둑 랭킹 사이트인 고레이팅에 따르면 신진서 9단은 지난해 말부터 3월 현재까지 중국 커제(22) 9단 및 박정환 9단, 미위팅(23) 9단 등과 함께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 중이다.
하지만 신진서 9단을 커제 9단이나 박정환 9단, 미위팅 9단 등과 동일한 반열에 놓고 저울질 하기엔 무리란 게 바둑계 안팎의 일반적인 평가. 무엇보다 신진서 9단에겐 아직까지 주요 세계대회 우승 트로피가 없다. 신진서 9단의 경쟁 상대들의 주요 세계대회 우승 기록을 살펴보면 커제 9단은 6개, 박정환 9단은 3개, 미위팅 9단은 1개의 우승컵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커제 9단은 백령배(우승상금 약 1억7,000만원, 2019년)와 신아오배(3억7,000만원, 2017년), 삼성화재배(3억원, 2016년) 등의 3개 대회 우승에 힘입어 세계 바둑계의 ‘현재권력’으로 군림 중이다.
신진서 9단에겐 최근 찾아왔던 천금 같은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지난해 12월 열렸던 ‘‘제1회 천부배 세계바둑선수권 대회’(우승상금 3억3,000만원)에서 중국 천야오예(30) 9단에게 패한 데 이어 올해 1월 벌어졌던 ‘제4회 백령배 세계선수권대회’에선 커제 9단에게도 아깝게 무릎을 꿇으면서 연거푸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천부와 백령배, 모두 유리했던 형국에서 터진 잇따른 실수로 상대방에게 역전 흐름까지 허용, 승리를 헌납했다는 부문은 뼈아프다. 신진서 9단의 본격적인 ‘성장통’이 시작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백령배 우승 트로피를 가져간 직후 “신진서 9단은 아직 서툴고 부족한 점이 있다”면서 “나는 그 나이 때 세 번의 우승을 한 바 있다”고 전한 커제 9단의 얄미운 인터뷰 소감 또한 냉정하게 곱씹어 볼 내용으로 읽힌다.
때 이르게 찾아온 터닝포인트의 기회마저 날렸다. 신진서 9단은 이달 열렸던 ‘세계월드바둑챔피언십 2019’(우승상금 약 2억원) 4강전에서도 패하며 박정환 9단의 우승 재물 명단에 포함돼야만 했다. 세계월드바둑챔피언십은 이벤트 기전이긴 하지만 커제 9단과 일본 이야마 유타(30) 9단 등을 포함해 한·중·일 간판급 선수들만 초청된 사실상 메이저급 대회다. 이 대회에서의 부진으로 신진서 9단은 진짜 미래권력을 잡기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인 박정환 9단이나 커제 9단 등에게 설욕할 호기마저 놓쳐버린 셈이다.
전문가들은 아직 어린 나이의 신진서 9단에게 기회는 충분하다면서도 ‘완전체’로 거듭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으로 신중함과 심리적인 안정감을 꼽았다. 바둑TV 해설위원 겸 국가대표 코치인 홍민표(35) 9단은 “신진서 9단이 진정한 세계 1인자로 올라서기 위해선 결국 실수를 줄이는 게 관건이 될 것”이라며 “쉽지는 않겠지만 실수를 했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고 대국에 임하는 훈련이 더 필요한 것 같다”고 조언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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