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北 개성 연락사무소 철수에 NSC 긴급 개최… 이산상봉ㆍ군사회담 등 멈춰설 듯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침묵하던 북한이 22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인원을 철수시키면서 문재인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ㆍ평화 프로세스 중재자론이 중대한 위기를 맞게 됐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남측 소장을 맡고 있는 천해성 통일부 차관에 따르면 북측은 이날 오전 9시 15분쯤 연락사무소 연락대표 접촉을 요청해 철수 방침을 알렸다. 이어 북측사무소 근무 인원 15명은 사무용품이나 장비 등은 그대로 남겨둔 채 간단한 서류만 챙겨 사무소를 떠났다. 북측은 철수하면서 “남측 사무소의 잔류를 상관하지 않겠다”면서 “실무적 문제는 차후에 통지하겠다”고 했다.
연락사무소 이상 기류는 지난달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매주 열리던 남북연락사무소장 회의가 3주간 열리지 않으면서 감지됐다. 북측은 지난주 전종수 소장이 소장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는 점을 통보했고, 황충성ㆍ김광성 소장대리도 사무소에 나오지 않았다. 천 차관은 “이날 오전에는 임시 소장대리가 근무를 하고 있었다”면서 “오전 9시 15분쯤 연락관 역할을 하는 북측 실무직원이 철수를 통보하고 나서 곧 연락사무소 사무실 건물에서 전원 철수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일단 우리 측 연락사무소 인원을 그대로 상주시켜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주말에도 우리 측은 약 25명이 근무한다. 천 차관은 “‘저희 사무소는 계속해서 근무하겠다’라는 입장을 (북측에) 전달했다”며 “(남측 인원이) 오늘 입경을 하지만 다시 월요일 출경해서 근무하는 데는 차질이 없기를 저희도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후 급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를 여는 등 긴박하게 후속 대응방안 논의에 나섰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2차 북미 회담 이후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기자회견 등을 통해 강경 발언을 쏟아내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대화거부 태세로 나오는 것은 우리 정부의 시나리오에도 없던 일”이라며 “우선 북측이 무슨 의도로 연락사무소 철수 결단을 내렸는지부터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고 전했다. 북한이 연락사무소에서 발을 뺀 것이 앞으로 계속해서 대화를 거부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교착 중인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몽니’를 부리는 것인지 판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북측 의도와 무관하게 당분간 남북관계는 살얼음판을 걷게 될 전망이다. 개성 연락사무소는 작년 4ㆍ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같은 해 9월 14일 마련한 남북 간 상시 연락채널이다. 이날 철수로 인해 190일 만에 남북 상시 대화가 멈춰선 것으로, 연락사무소를 통한 남북교류 협의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미 간 대북제재 면제 협의를 마친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은 물론이고 최근 9ㆍ19 군사합의 이행을 위해 국방부가 북측에 제안한 군사회담도 언제 답변이 올지 알기 어려워졌다. 판문점, 군 통신선 등 접촉 창구는 살아있지만 연락사무소를 대체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남북관계가 급격히 경색되면서 정치권에서는 북측의 섣부른 움직임을 향한 비판도 쏟아진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종로(미국)에서 뺨 맞고 한강(남측)에서 눈 흘겨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지난해 5월 26일처럼 당장 주말에라도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약식 정상회담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 미국과의 ‘담대한 빅딜’을 이루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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