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서 국내 첫 대규모 전시
핑크빛 재킷을 입고 근심 어린 표정으로 발 밑의 수영장을 들여다보는 남자. 그의 존재를, 감정을,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물 속을 자유롭게 헤집고 있는 또 다른 사람. 작가의 이름을 낯설어하는 이도 그의 대표작 ‘예술가의 초상(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gures)ㆍ1972)’은 한 눈에 알아볼 것이다. 청량한 푸른빛만으로 만인을 매료한,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82) 이야기다. 그의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이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22일 개막한다.
회화, 드로잉뿐만 아니라 판화, 사진 등 133점을 선보인다. 전시를 공동 주최하는 영국 테이트미술관이 소장한 호크니의 대표작들이 대거 한국땅을 밟았다. ‘예술가의 초상’은 고가의 개인 소장 작품이라 들어오지 못했으나, 못지 않게 사랑 받는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ㆍ1967)’ ‘클라크 부부와 퍼시(Mr. and Mrs. Clark and Percyㆍ1971)’ 등이 왔다.
호크니는 ‘현존하는 가장 비싼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예술가의 초상’은 지난해 11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9,032만 달러에 낙찰됐다. 한화로 1,020억원에 달하는 가격. 값으로 예술의 가치를 전부 따질 순 없지만, 컬렉터가 호크니의 작품을 얼마나 욕망하는지를 대변하는 수치다. 호크니가 80세 생일을 맞은 2017년에는 1년 간 영국 테이트미술관, 프랑스 퐁피두센터,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을 순회했는데, 1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호크니가 이토록 사랑 받는 이유는 뭘까. 우선 뛰어난 스토리텔러라는 점이 꼽힌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등에 걸린 다른 작가의 대작들은 주로 핏빛 전쟁이나 타인의 살을 베는 역사적 장면을 주로 기록하는 반면, 호크니는 그 자신의 비통한 마음과 내면을 다룬다.” 영국 가디언의 평가다. 스스로의 마음과 감성에 집중한 덕인지, 작품의 따뜻한 색감, 인물의 깊은 표정이 관람객을 특별한 이야기로 끌어들인다. 얼핏 보면 수영장과 두 인물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 ‘예술가의 초상’ 역시 깊은 사연을 담고 있다. 수영장을 응시하는 남성은 호크니의 제자이자 애인이었던 피터 슐레진저. 떠나가는 애인과 그를 잡을 수 없는 호크니의 오묘한 절망감을 표현했다.
끝없이 연구하는 자세 역시 호크니를 특별하게 만든다. 그는 평생 빛과 그림자, 인물을 더욱 자연주의적으로 재현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크고 작은 붓으로 ‘더 큰 첨벙’의 생생한 물살을 표현하는 데만 2주를 매달렸을 정도. 관람객의 이동을 제한하는 회화의 고정된 시점을 극복하려 3년 간 애썼지만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며 ‘조지 로슨과 웨인슬립’(1972~5)을 미완성 상태로 두기도 한다. ‘나의 부모님’(1977)을 위해선 그의 부모님 사진을 50여장 찍어 오랫동안 빛과 색을 연구했다. “혹자는 예술엔 심오한 연구가 필요 없다고 하지만 틀린 이야기죠.” 호크니는 여든을 넘긴 지금도 매일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연극 무대를 디자인한다.
회화에만 천착하지 않고 실험을 거듭하는 형식적 변화도 남다르다. 예컨대 이번 전시에 온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는 3,000장의 사진을 이어 붙여 완성했다. 테이트미술관에도 아직 전시되지 않은 따끈한 신작이다. 독특한 자줏빛 색감으로 관람객의 눈길을 빼앗는 ‘더 큰 그랜드 캐니언’(1998)도 60개의 캔버스를 붙여 만든 것으로, 높이 2m, 폭 7m에 달하는 대작이다. 전시는 8월4일까지로, 입장료는 성인 기준 1만 5,000원이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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