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공약인 포괄임금제 규제 강화가 시장과 노동계의 예상과 달리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상반기 중 내놓을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에서 고정적으로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는 제도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란 점을 강조해 기업들을 안심시키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 연장ㆍ야간 근로 수당을 급여에 포함해 일괄 지급하는 임금 제도를 뜻한다. 특히 단위기간 내 일정 시간 연장근로를 한다고 간주하고 정액의 연장근로수당을 주는 ‘고정 연장근로수당 지급 제도’로 운영하는 기업이 많다. 그런데 게임업계 등 일부 기업의 경우 사전에 정한 시간을 넘겨 자주 밤샘 근무를 시키고도 추가 수당은 주지 않는 식으로 악용하는 경우가 있어 ‘공짜 야근’과 장시간 근로의 주범으로 꼽혀 왔다.
이 같은 ‘공짜 야근’ 관행이 기업에 만연해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지만, 고용부의 실태조사 결과는 달랐다. 21일 고용부와 한국노동연구원이 5개 업종의 사업체 30곳(근로자 100인 이상 12곳, 50~99인 18곳)을 대상으로 지난해 하반기 실시한 집단 심층면접(FGI) 방식의 포괄임금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6.7%(5곳)만 실제 연장근로시간보다 임금을 덜 준 것으로 나타났다. 절반 이상인 63.3%(19곳)은 실제 연장근로시간 이상 임금을 줘 문제가 없었고, 나머지 20.0%(6곳)는 근로시간을 측정하지 않아 임금을 덜 줬는지 여부가 불분명했다. 조사 대상 30곳은 모두 고정적으로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는 사업체였다.
이런 결과는 포괄임금제 규제를 걱정해야 할 기업이 생각만큼 많지 않다는 고용부 판단을 뒷받침한다. 최태호 고용부 근로기준정책과장은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이 발표되면 고정적으로 주던 연장근로수당을 없애고 근로시간을 전부 정확히 측정해야 할 것으로 여기는 기업들이 많은데 사실과 다르다”며 “수당이 지급되는 연장근로 시간보다 실제 연장근로를 많이 시키는 경우만 불법이므로, 그렇지 않은 곳은 포괄임금제 규제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달 국내 대기업의 57.9%가 포괄임금제를 활용하고 있다는 설문 결과를 내놨는데, 이중 상당수는 수당이 지급되는 연장근로 시간을 초과해 시키지 않는 것으로 고용부는 보고 있다.
고정 수당이 지급되는 연장근로 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시키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굳이 고정연장근로수당을 없애고 일일이 근로시간을 측정하는 식으로 업무를 변경할 필요 없이 초과 근로시간 분에 대한 수당을 추가로 지급하면 된다는 내용이 가이드라인에 담길 예정이다. 예컨대 월 20시간 연장근로수당을 주는 기업이 어떤 직원에게 월 24시간 연장근로를 시켰다면, 이 직원에게는 고정 연장근로수당에 더해 4시간 분의 추가 수당을 주면 된다는 식이다. 최근 포괄임금제 폐지를 선언한 넥슨이나 넷마블은 기존의 고정 연장근로수당을 기본급에 포함하고, 주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에는 연장근로수당을 주기로 했는데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노동계 반응은 고정 연장근로 시간보다 일을 더 시키는 기업을 찾아내 제재하는 근로감독을 고용부가 얼마나 철저히 할 계획인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권 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정 연장근로수당만 주면서 일은 밤새도록 시키는 일부 게임회사처럼 하면 안 된다고 명확히 선언하고, 점검에도 적극 나서겠다는 약속이 가이드라인에 담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