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게 차려진 카지노 객장이지만 썰렁하다. 손님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미모의 젊은 여성들만 있다. 딜러들이다. 노출이 있는 유니폼으로 차려입은 이들은 각자 테이블에서 혼자 패를 돌린다. 혼잣말을 하는 듯 하던 이들은 이따금 누군가에게 묘한 미소도 띤다. 중국에서 화면으로 판돈을 건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다.
2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필리핀의 카지노 허가권을 가진 국영기업 파코(PAGCOR)가 지난해 온라인 도박장 인허가로 74억페소(약 1,6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전년(39억페소) 대비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익이다. 실물 객장과 호텔을 짓는 등 ‘전통적’ 방법으로 카지노 관광객을 유인하던 필리핀 도박산업이 온라인 쪽으로 발빠르게 변신하고 있다.
파코로부터 온라인 인허가를 받아 간 이들은 대부분 중국 자본이다. 수도 마닐라 시내 고층 빌딩 중의 하나인 PBCom 타워 사무실 대부분이 중국 자본이 세운 온라인 도박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업계는 시진핑(習近平) 정권의 ‘부패와의 전쟁’ 단속으로 타격을 입은 마카오 등지의 오프라인 도박장이 필리핀에 몰려온 것으로 보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허가만 받으면 외국인도 온라인 도박장을 개설할 수 있다. 이용객도 중국 공안이 무서워 실제 도박장에 가지 못하지만 유혹을 이기지 못한 중국 도박꾼이다. 딜러 중에 유달리 중국 여성들이 많은 이유다.
‘글로벌 베팅&게이밍 컨설턴트’의 로렌 필링 이사는 “중국인들은 도박을 좋아한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같은 시간대에 있는 필리핀은 마카오로 갈 수 없는 많은 도박기업들에 인기”라고 말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마닐라 부동산 시장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온라인 도박장의 임대 계약 급증 예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부동산 정보업체 콜리어스 필리핀에 따르면 지난해 마닐라 시내 사무실 임대 전체계약 면적 중 21%에 해당하는 326만㎡를 온라인 도박회사들이 차지했다. 여의도 면적(290만㎡)보다 넓고, 마닐라 시내에서 콜센터(19%)가 차지한 면적보다 넓다. 비교적 인건비가 저렴하고 영어를 쓰는 필리핀에는 글로벌 기업들의 콜센터가 많다.
업체 관계자들과 이곳에서 일을 할 중국인들이 몰리면서 시내 콘도(아파트) 임대료도 크게 올랐다. 마닐라 현지 소식통은 “지난해 주요 오피스 빌딩 인근 주거지 임대료가 2016년 대비 임대료가 50% 이상씩 올랐다”며 “중국인 유입이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전했다.
필리핀은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10국 전체 카지노 중 절반 수준인 55개의 카지노를 자국에 설치해놓고 있는 카지노 ‘강국’이다. 지난해에도 카지노 사업으로 전년 대비 8.5% 늘어난 41억달러(약 4조6,00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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