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令夫人)은 사전에서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 또는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을 높여 이르는 말’로 풀이되어 있다. 앞의 뜻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아내를 높이기 위해 누구에게나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용에 제약이 많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주인공 ‘일곱 할머니’에게 편지와 선물을 보냈다”, “영부인 김정숙 여사님... 한국어를 배우는 말레이시아 학생들 격려....”, “국제 용감한 여성(IWOC) 행사에 참석한 멜라니아 트럼프 영부인” 세 예문에서 모두 ‘영부인’이 대통령 부인에게 쓰였다. 다만 외국인의 경우, ‘이스라엘 총리와 영부인 사라’, ‘부통령과 영부인 카렌 펜스’, ‘메릴랜드주 영부인 호건 여사’처럼 대통령이 아닌 사람의 부인에게도 예외적으로 쓰인다.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호칭어 ‘영부인’이 대통령 부인에게로 한정되어 쓰이기 시작한 것은 권위주의 절정기였던 1970년 전후라고 한다. 총리, 장관에게도 쓰던 ‘각하’가 대통령 전용말이 된 것과 같은 시기다. 이와 함께 대통령 아들, 딸에게는 각각 ‘영식’과 ‘영애’가 독점적으로 쓰였다.
그런데 1980년대 말부터 청와대에서는 ‘영부인’을 쓰지 않겠다거나 쓰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대통령 전용말로서 ‘영부인’은 흔들림이 없다. 청와대가 요구해도 언론은 관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지자들은 ‘쑤기 여사님’, ‘정숙 씨’라고 친근하게 가리키기도 하고 때로는 ‘영부인’을 통해 대통령과 부인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 존중을 드러내기도 한다. 현실과 다른 ‘영부인’의 사전 뜻풀이를 바꾸어야 할지 아니면 본래의 의미대로 쓰임을 확대하는 노력을 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이정복 대구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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