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주인공은 적에게 공격받아 처참하게 최후를 맞이한 병사들이다. 병사들은 총에 맞아 말에서 떨어지거나 황급히 달아난다. 그런데 이들을 공격하는 적은 정작 등을 돌린 채 엉뚱한 곳으로 총구를 겨누고 있다. ‘조선에서의 첫 교전: 정주 전투’라는 제목의 이 그림은 1904년 3월 28일 평안도 정주에서 벌어진 러일전쟁을 묘사한 것이다. 땅에 떨어져 나뒹구는 병사는 러시아군이고, 등지고 총구를 겨눈 이는 일본군이다.
조선에 거주 중이었던 프랑스 특파원이 프랑스 화보신문에 보낸 그림이다. 그는 그림을 설명하는 기사에서 “900명의 러시아 기병은 2,000명에 달하는 일본에 맞서 몇 시간에 걸쳐 교전했다. 러시아군은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질서정연하게 종대로 후퇴했다. 비록 수에서 우위를 점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일본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고 전했다. 프랑스의 동맹국이었던 러시아의 편에서 쓴 기사다. 정주 전투에서 러시아군은 일본군에 대패했다.
화보신문은 역사적 사건이나 시대적 풍경을 담은 그림 위주로 인쇄한 신문이다. 19세기 중반 이후 서구의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등장했다. 그림이 주인공인 신문은 대중에게 빠르고 즉각적인 정보를 제공했다. 아시아를 침략한 서구의 제국주의 선전물이자 도구로도 활용됐다.
책은 1850년부터 1937년까지 프랑스에서 발행된 화보신문 ‘르 프티 주르날(Le petit journal)’, ‘르 프티 파리지앵(Le petit parisien)’, ‘일뤼스트라시옹(L’illustration)’ 등에 실린 아시아 근대 역사 이미지를 추린 것이다. 1884년 청불전쟁부터 청일전쟁, 의화단 운동, 러일전쟁, 신해혁명 발발 등이 생생한 그림으로 해석됐다.
신문의 그림들은 제국주의적인 관점을 철저하게 반영하고 있다. 중국인은 잔인하고 혐오스럽게 그려졌다.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현대화하는 중국의 풍경도 우스꽝스럽게 표현됐다. 중국 여성이 아이 같은 남동생과 함께 골프를 하러 간다거나, 서구식 복식 법제화를 두고 토론하는 중국 의회를 패션쇼 무대처럼 묘사한 식이다.
화보신문을 발굴해 엮은 중국인 역사학자 자오성웨이는 책 서문에서 “입장이나 관점의 차이 때문에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이 우리에게 익숙한 견해와 다른 경우가 많고, 심지어 서구의 중국 침략을 원조나 복음화로 단순화했다”고 비판하면서도 “그 기사의 관점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역사적 교훈을 기억하고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원래의 기사와 삽화를 그대로 보존했다”고 출판 배경을 밝혔다.
책의 다른 묘미는 프랑스뿐 아니라 당시 영국과 러시아, 일본 등 열강의 미묘한 관계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조선 침략은 잔인한 행위로 묘사하면서도 냉랭하고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한다. 책에는 러시아 기병의 공격을 당하는 조선인과 조선에 주둔한 일본군에 잔인하게 처형당하는 조선인이 등장한다. 조선인은 외세의 침략에 아무런 대응조차 못하는 나약한 아시아인으로 나온다. 책을 번역한 이성현씨는 “책에서 읽어야 할 것은 역사적 진실이 아니라 특정한 시선 및 특정하게 구성된 진실일 것”이라고 했다.
주르날 제국주의
자오성웨이ㆍ리샤오위 엮음ㆍ이성현 옮김
현실문화 발행ㆍ624쪽ㆍ4만8,000원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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