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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공감 쉬운 의제부터 다루며 '사회적 대화' 풀어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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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공감 쉬운 의제부터 다루며 '사회적 대화' 풀어가야

입력
2019.03.21 04:4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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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앞에서 '비정규직 이제 그만 공동투쟁' 소속 활동가들이 탄력근로제 확대 노사정 합의를 비판하며 경사노위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앞에서 '비정규직 이제 그만 공동투쟁' 소속 활동가들이 탄력근로제 확대 노사정 합의를 비판하며 경사노위 해체를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사 문제와 같이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에 있어 사회적 대화야말로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비교적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 문제 해결 방식이라는 점에는 전문가들 사이에 큰 이견이 없다. 세계적으로 어느 정도 검증된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화와 타협의 전통, 그리고 상호 신뢰가 빈약한 우리 토양에 사회적 대화가 뿌리를 내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파행 역시 이런 연장 선상에서 볼 수 있다.

경사노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의제 선정 단계부터 신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정부와 정치권이 경사노위에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 의제를 논의 시한을 정해 놓은 상태에서 하달한 것이 파행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 부소장은 최근 노사정 합의가 이뤄진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 등은 적합한 의제였다고 설명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기 집단의 요구를 100% 관철시키지 못하면 패배, 변절처럼 여겨지는 등 이해관계 조정이 잘 안 되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의 토양이므로 노사 양측의 공감대 형성이 쉬운 의제 위주로 다루며 신뢰를 쌓아 가야 한다”며 “당장 이익과 손해가 엇갈리는 의제를 자꾸 다루면 상호 불신이 더 커질 뿐”이라고 말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지역별ㆍ산업별 이슈로 시선을 옮기면 노사 양쪽이 사회적 대화를 절실하게 요구하는 사안들이 많다”며 “정치화 되기 쉬운 전국적 의제보다는 지역ㆍ산업별 의제 위주로 사회적 대화를 풀어가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지난달 19일 서울 경사노위 브리핑실에서 탄력근무 관련 합의문이 발표된 후 대표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총 회장, 이철수 경사노위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장,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 배우한 기자
지난달 19일 서울 경사노위 브리핑실에서 탄력근무 관련 합의문이 발표된 후 대표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손경식 한국경총 회장, 이철수 경사노위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장,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 배우한 기자

중장기적으로는 노동계와 경영계가 대화를 위한 기초 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대로 된 사회적 대화를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노사 단체의 정책 역량”이라며 “정책적 대안을 만들고 이를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과정이 사회적 대화인데, 우리 노사는 이런 준비가 잘 안 돼 있다”고 꼬집었다. 장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양대노총은 전체 예산 규모가 작지 않은데도 선진국 노조와 비교하면 정책연구소 운영 등 정책 역량을 키우는 데 쓰는 예산 비중이 너무 미미하다”면서 “사용자 단체들도 과거 개발독재 시절에 위로부터 만들어진 관제 단체 성격이 남아 있어 역량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대화가 잘 굴러가려면 외부의 시선 역시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 타협보다는 진영논리가 강하고 정부 관료가 내리는 신속한 결정에 길들여진 탓인지 우리 사회에서는 툭하면 ‘사회적 대화 무용론’이 나온다. 최근 자유한국당 등 정치권 일각에서 경사노위 폐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두고 신광영 교수는 “자기 주장만 고집하고 타협을 못하는 문화는 다름 아닌 정치권에서 비롯해 다른 사회 영역으로 퍼진 것”이라고 꼬집었다.

장홍근 선임연구위원은 “좌우 양 극단에서 경사노위의 위기를 반기고 있는 것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 해결이 자리를 잡을수록 극단 세력의 입지가 좁아지기 때문”이라며 “자신들의 근시안적, 단기적 이익을 위해 사회적 대화의 인프라를 없애자고 하는 주장은 매우 우려된다”고 말했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가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논란이 큰 탄력근로제 합의안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사노위의 첫 합의 내용이 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경사노위 본위원회를 보이콧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청년·여성·비정규직 대표가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논란이 큰 탄력근로제 합의안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사노위의 첫 합의 내용이 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현재 경사노위 본위원회를 보이콧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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