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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진 “평소 사람들 관찰을 즐겨요… 그런 인물데이터가 연기 자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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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진 “평소 사람들 관찰을 즐겨요… 그런 인물데이터가 연기 자산이죠”

입력
2019.03.20 15:41
수정
2019.03.20 19:1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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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돈’서 일중독 금융감독원 직원 열연

조우진은 “출연 분량 욕심, 주연 욕심, 배역 욕심은 없다”며 “나를 심장 떨리게 하는 이야기이고 함께하는 동료들이 좋으면 이런저런 고려 없이 작품에 뛰어든다”고 말했다. 쇼박스 제공
조우진은 “출연 분량 욕심, 주연 욕심, 배역 욕심은 없다”며 “나를 심장 떨리게 하는 이야기이고 함께하는 동료들이 좋으면 이런저런 고려 없이 작품에 뛰어든다”고 말했다. 쇼박스 제공

참 기묘한 일이다. 배우 조우진(40)만 등장하면 스크린 안과 밖 경계가 사라진다. 스크린 안에서도 그는 스크린 밖 현실 세계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 같다. 그래서 매번 새로운 얼굴로 찾아오는데도 어디선가 마주쳤던 사람인 듯해 괜히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20일 개봉한 영화 ‘돈’에서도 그렇다. 금융시장의 불법 거래를 감시하는 금융감독원 수석검사 한지철. 주식 브로커 조일현(류준열)과 작전 설계자 번호표(유지태)의 금융사기 범죄를 뒤쫓는 인물이다. 얼마나 집요하고 맹렬한지 그는 별명마저 ‘사냥개’다. 다분히 영화적으로 설계된 한지철을, 조우진은 정의감이 아닌 직업의식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로 생활감 있게 그려낸다.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조우진은 “평범했던 금융감독원 직원이 어떤 이유로 비범해졌는지 상상하면서 연기했다”고 말했다.

그가 정의한 한지철은 ‘워커홀릭’이다. “나날이 지능화되는 금융사기 수법을 파악하고 분석하기 위해 밤낮 없이 일에 매달렸을 것이고, 그 치열함이 시스템과 위계를 건너뛰는 무모함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사람은 분명 가정에 소홀했을 거라는 생각에 한지철이 딸과 통화하며 ‘새 아빠’를 언급하는 장면을 넣어 보자고 아이디어도 냈다. “장난감 사달라고 조르는 딸에게 한지철이 ‘돈 잘 버는 새 아빠한테 말하라’고 대꾸해요. 한지철에게도 돈에 대한 콤플렉스와 상실감이 있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요.”

“너희들이 하는 짓이 도둑질, 사기랑 뭐가 다른데? 일한 만큼만 벌어.” 금융감독원 자본시장 조사국 수석검사 한지철은 등장하는 장면이 많지 않은데도 확실한 존재감을 새긴다. 쇼박스 제공
“너희들이 하는 짓이 도둑질, 사기랑 뭐가 다른데? 일한 만큼만 벌어.” 금융감독원 자본시장 조사국 수석검사 한지철은 등장하는 장면이 많지 않은데도 확실한 존재감을 새긴다. 쇼박스 제공

‘조우진’이라는 이름을 충무로에 알린 영화 ‘내부자들’(2015)에서도 그는 마치 야근하는 직장인 같은 얼굴을 하고 극중 이병헌의 손목을 쇠톱으로 (자르지 않고) 썰 것을 부하에게 지시했다. 톱을 든 손에 결혼 반지가 빛나고 있어서 더 섬뜩했다. 아주 작은 디테일에서도 조우진의 뛰어난 해석력과 표현력이 드러난다. 그는 “내가 연기한 인물들이 지극히 인간적이고 현실적으로 느껴지길 바란다”며 “그래야 관객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평소에 그는 사람 관찰을 즐긴다. 그의 눈과 귀에 포획되어 차곡차곡 쌓인 인물 데이터는 연기 자산이다. “어떤 배역을 맡으면 그동안 제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서 그 인물과 가장 비슷한 사람이 누군지 떠올려 봅니다. 그분의 특징을 참고해서 저만의 호흡과 정서를 버무린 뒤 말투를 입에 붙이고 행동으로 옮겨 담는 거죠. 그러면 그분도 저도 아닌 새로운 인물이 만들어져요. 말로 설명하니 거창한데, 제 목표는 이거예요. ‘내 안에 너 있다’. 하하.”

“일한 만큼만 벌자.” 극중 한지철의 일침은 교과서적이지만 꽤 통렬하다. 조우진은 “이 대사가 한지철의 정체성이자 이 영화의 정체성을 대변하기 때문에 내게는 큰 숙제 같았다”며 “관객들도 함께 이 대사를 곱씹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우진은 한지철의 전문성과 집요함, 인간적 매력을 자유자재로 풀어낸다. 쇼박스 제공
조우진은 한지철의 전문성과 집요함, 인간적 매력을 자유자재로 풀어낸다. 쇼박스 제공

지금은 충무로를 휘어잡은 다작 배우이지만 ‘내부자들’을 만나기 전까지 10여년 간 지독한 무명 시절을 겪었다. ‘돈’이 늘 발목을 잡았다. 돈 때문에 학업(서울예대 연극학과)도 마치지 못했고, 연극을 하다가도 생활비를 벌러 물류창고, 편의점, 주유소 등에서 일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단역밖에 주어지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버니까 행복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영화 ‘국가부도의 날’과 ‘마약왕’ ‘창궐’,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선보였다. 올해 여름엔 ‘전투’를 개봉하고, 조만간 새 영화 ‘서복’ 촬영을 시작한다. 살림살이가 나아진 요즘도 그는 소박하다. “남편이자 아빠로 가정을 책임지고 소속사에 수익 창출을 하려면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하겠죠. 하지만 사람의 가치를 더 귀하게 생각해요. 돈보다는 사람이 더 어려워져야 세상에 얼굴 찌푸릴 일도 줄어들 테니까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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