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포돛배는 나주영상테마파크 아래 다야선착장으로…4월 영산포로 이동
나주 시내에서 영산대교를 건너면 영산강에 살랑거리는 봄 바람에 섞여 홍어 삭은 냄새가 진동한다. 강변을 따라 홍어음식점 10여 개, 가공 판매 업체 30여 개가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호ㆍ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음식인지라 홍어를 즐기는 사람은 입안에 침이 고일 테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코를 싸맬 지 모른다.
나주를 비롯한 전라도에선 요즘도 홍어 없는 잔치는 잔치가 아니다. 국내 첫 홍어 명인에 선정된 ‘홍어1번지’ 식당 안국현 사장은 한때 홍어 값이 비싸 잔칫집 주인이 홍어대신 벌금 내는 셈치고 100만원을 손님들에게 내놓았는데, 다들 “홍어도 없이 왜 불렀냐”고 불평을 쏟아냈다는 일화를 들려 주었다. ‘영산포 역사갤러리’에서 만난 한 주민은 “홍어만큼 맛난 음식이 어디 있다고?”라며 반문했다. 아무리 먹어도 탈나는 일이 없다는 점도 빼지 않는다. 영산포 역사갤러리는 일제강점기 조선식산은행 건물을 개조해 홍어와 영산포의 역사를 전시한 공간이다.
삭힌 홍어의 역사는 600여년에 이른다. 고려 말 왜구의 침범을 피해 육지로 이주한 흑산도 인근 영산도 주민들이 보름 가까이 걸려 영산포(당시 남포)에 도착해 보니 다른 물고기는 모두 썩어 문드러졌는데 홍어만 형체가 그대로였다고 한다. 폭 삭았지만 먹어도 뒤탈이 없었고, 먹을수록 그 맛에 빠져든 게 영산포 홍어의 시작이었다. 정약전도 ‘자산어보’에서 ‘나주 사람들은 홍어를 삭혀서 먹는다’고 썼다. 삭힌 홍어의 본고장을 흑산도가 아니라 영산포로 보는 근거다.
영산포 골목으로 접어들면 잘 숙성한 홍어만큼 곰삭은 풍광이 모습을 드러낸다. 문닫은 ‘영산포극장’은 건물 자체가 한편의 흑백영화다. 허물어진 지붕 틈새를 담쟁이덩굴이 엉성하게 덮었고, 외벽의 영사기와 낡은 영화 포스터 장식이 이곳이 극장이었음을 알려 준다. 극장에서 조금 더 가면 아직도 ‘여인숙’ 간판을 단 숙박업소가 몰려 있다. 언덕 꼭대기 100년 역사의 교회에서 내려다보면 시간이 멈춘 듯한 마을 지붕이 펼쳐진다. 땔감을 팔러 새벽 길을 더듬어 온 인근 농부들이 죽 한 그릇으로 허기를 때웠다는 죽전골목은 아직도 1920~30년대 가난의 향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반면 일제강점기 나주 지역 최대 지주였던 구로즈미 저택은 지금 봐도 번듯하게 격식을 갖췄다. 1935년 일본에서 목재와 기와를 들여와 서양풍을 가미한 주택은 현재 노인복지관과 전통찻집으로 쓰고 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문서고 건물도 그대로 남아 있는데, 바로 옆에 지중해식 건물을 더 지어 ‘영산나루’라는 간판을 걸고 카페, 펜션, 이탈리아 음식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황토 담장과 아름드리 팽나무를 중심으로 야외 테이블을 놓아 동서양의 조화가 썩 분위기 있다.
국내에 하나밖에 없는 내륙 등대이자 강변 등대인 영산포등대는 홍어와 함께 영산포의 상징물이다. 1915년에 설치된 영산포 등대는 수산물과 곡물을 싣고 목포에서 영산포까지 48km 뱃길을 운항하던 선박을 안내하는 길잡이이자, 영산강의 수위를 재는 기능을 동시에 수행했다. 영산강 하구둑 건설로 1977년 마지막 배가 끊긴 다음부터는 영산포의 번영을 추억하는 상징물로만 남았다.
영산포등대 앞에서 관광객을 태우던 황포돛배도 죽산보 개방으로 수위가 낮아져 약 10km 하류(찻길로 21km) 다야선착장으로 옮겨 운영하고 있다. 본격 농사철이 시작되면 보에 물을 채울 예정이어서 4월부터는 다시 영산포에서 운행할 예정이다.
다야선착장에서 올려다보는 언덕에는 나주영상테마파크가 옛 도읍처럼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고구려의 모습을 재현해 2006년 ‘주몽’을 시작으로 수많은 드라마를 촬영한 오픈 세트장이다. 고구려궁과 국내성 성루 등 건물의 규모도 웅장하지만 무엇보다 테마파크에서 내려다보는 영산강 풍광이 으뜸이다. 강 건너 다시면은 나주 구간 영산강의 12개 정자 중 8개가 품고 있어 빼어난 경치로 검증된 곳이다. 수풀이 뒤덮인 드넓은 고수부지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의 물길이 한없이 부드럽다.
나주=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