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은 “위원회가 노동계에 경도” 반박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사정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 대화기구의 공익위원들이 “시간이 없다”면서 노사정의 조속한 합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경영계가 논의에 소극적으로 임한다”며 이례적으로 공개 비판도 했다. 그러나 경영계는 느긋한 모습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의제별 위원회인 노사관계 제도ㆍ관행 개선위원회(이하 노사관계위)의 박수근 위원장(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공익위원 7명은 18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ILO 기본협약(핵심협약) 비준 등에 관한 노사정 합의를 위한 공익위원 제언’을 발표했다.
공익위원들은 “지금까지 노사 간에 진지한 협의나 가시적인 성과가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 공익위원 일동은 유감을 표시하면서 다시 한번 노사에게 조속한 타결을 공개적으로 요청한다”면서 “늦어도 3월 말까지 노사가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 ILO 기본협약 비준에 따른 법 개정 논의와 관련한 최종적인 사회적 합의를 마무리할 것을 간곡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노사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전문가 집단을 표방하는 공익위원들이 공개적으로 합의를 촉구하고 나선 건 오는 4월9일까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구체적 성과가 없으면 우리나라가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의 대가로 유럽연합(EU)로부터 직ㆍ간접적인 불이익을 받고 국제적 망신을 사게 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이승욱 공익위원(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회견에서 “4월9일 이후 ‘전문가 패널’ 절차로 넘어가면 전문가들이 우리나라의 위반 사항에 대해 시정을 하라는 권고를 하는데, (권고를 지키지 않으면) 굉장히 다양한 형태의 제재가 수반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5월 EU 의회 선거를 앞두고 한국의 자유무역협정(FTA) 합의문 위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후보들의) 공약이 EU 전체에 퍼져 있으며 EU가 일본, 베트남과 FTA를 앞두고 있어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분위기도 많아 상당히 강경한 내용이 들어갈 수 있다”고 전했다.
한국은 EU와 2009년 FTA를 맺으면서 노조할 권리 확대를 보장하고 강제 노동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이를 10년 가까이 지키지 않자 EU가 요구해 지난해 말부터 공식적인 분쟁해결 절차에 들어간 상황이다.
일부 공익위원들은 현재 논의 공전의 책임이 노동계보다는 경영계에 있다고 지적했다. 박수근 위원장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논의 진척이 없는 상황에 대해) 경영계에 불만이 좀 있다”면서 “경영계가 (ILO 핵심협약과 무관한) 단체교섭이나 쟁의행위 관련된 상황을 강하게 주장해서 노동계가 받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고 있고, 전체적으로 경영계 요구는 지나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수근 위원장은 경영계 요구 사안 중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파업시 사업장 점거 금지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명확화는 일부 수용할 만한 구석이 있다고 인정했지만, △파업시 대체근로 인정 △부당노동행위제도 폐지는 합리적인 요구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승욱 위원도 “노동계는 충분한 논의 의사가 있다는 게 여기저기 감지되는데 경영계는 전혀 협상 의지를 감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하려면 해직자ㆍ실업자의 노조할 권리 보장, 전교조 합법화 등 단결권 관련 법 조항만 개정하면 된다. 그런데 경영계는 노조 파업시 대체인력 투입 허용,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폐지 등 경영계의 방어권을 높이기 위한 조치도 함께 수반되어야 단결권 확대에 합의해 줄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공익위원들은 노사정 합의 추진의 시한을 3월 말까지로 보고, 그 이후에는 논의 경과를 정리해 국회에 보내고 논의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공익위원 제언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ILO 기본협약 비준의 시급성만을 중점적으로 강조하면서 경영계 요구사항은 노동계 반발이 약한 사항만 우선 고려하고 핵심 요구사항은 뒤로 미루자는 것으로, 이는 위원회가 주로 노동계 의견에 경도되어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경영계는 결코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맞섰다.
양측의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는 했지만 일단 3월 말까지는 노사정이 물밑 대화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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