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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데”… 연예인 특권의식이 키운 ‘승리ㆍ정준영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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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데”… 연예인 특권의식이 키운 ‘승리ㆍ정준영 사태’

입력
2019.03.18 04:40
수정
2019.03.18 11:0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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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계ㆍ교육계까지 스타 줄대기 

 K팝ㆍ드라마 인기에 한류 산업화 

 스타로 뜨면 제왕처럼 떠받들고 

 공인으로 불리며 사회적 권력까지 

불법 몰카 영상 촬영 혹은 유포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가수 승리(왼쪽부터)와 정준영, 최종훈. 연합뉴스, 한국일보 자료 사진
불법 몰카 영상 촬영 혹은 유포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가수 승리(왼쪽부터)와 정준영, 최종훈. 연합뉴스, 한국일보 자료 사진

여성을 거래 가능한 물건 취급했다. 성관계 불법촬영물을 만들어선 지인들과 돌려봤다. 음주운전을 한 후 ‘내가 왜 기사가 나야 하냐’는 식의 적반하장 반응을 보였다. 아이돌그룹 빅뱅 출신 승리(29)와 아이돌 록밴드 FT아일랜드 전 멤버 최종훈(29), 유명 방송인 겸 가수 정준영(30)이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주고 받은 대화는 대중의 공분을 살 만했다. 이들 연예인들의 집단적 일탈에는 “내가 누구인데”라는 인기 스타로서의 특권의식이 깔려있다. 막강한 연예 권력에 도취돼 사회적 규범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회가 조장한 특권의식이 ‘승리ㆍ정준영 사태’의 또 다른 배후다.

 ◇2009년 승리 대기실에서 벌어진 일 

지상파 방송 예능국에서 20년 넘게 일한 한 PD는 “연예인은 한 번 뜨고 나면 누구도 제어할 수 없다”고 했다. 연예인의 대표적인 갑질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몽니’다. MBC 예능국 간부급 PD는 승리를 무대에 세우기 위해 그의 대기실까지 찾아간 적이 있다. 음악방송 스태프가 승리에게 사전 연습 무대에 서 줄 것을 거듭 요청했는데 승리가 꼼짝하지 않아서였다. 빅뱅으로 인기를 얻은 승리가 솔로곡 ‘스트롱 베이비’로 활동하던 2009년 일이었다.

대중의 사랑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니 안하무인이 되기 일쑤다. 소속사뿐 아니라 방송사도 자신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종종 상식 이하의 행동으로 이어진다. 가수 서인영은 2017년 두바이 예능프로그램 촬영장에서 욕을 해 촬영을 중단했다. 촬영 여건 등이 불만족스럽다는 게 이유였다고 한다. 잉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연예인들은 데뷔 때부터 ‘너희는 특별해’란 말을 들으며 주위의 관리를 받으며 활동하다 보니 스스로를 권력이라 느끼기 쉽다”고 말했다.

연예인을 제왕처럼 떠받드는 시스템은 연예인을 특권의식에 젖게 하고, 승리 등 젊은 스타들은 ‘금도’를 넘으면서도 자신들도 모르게 죄의식을 갖지 않게 된다. 승리, 정준영과 단체대화방에서 불법 촬영물을 공유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최종훈은 “제가 특권의식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고 크게 후회하고 있다”고 지난 14일 사과문을 냈다.

 

 ◇대기업 임원과 교수도 아이돌이라면… 

대중문화의 산업화로 연예인의 특권의식은 예전보다 더 공고해졌다. 박진규 문화평론가 겸 소설가는 “한류로 인해 아이돌이 단순한 스타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대단한 자본의 가치를 만드는 대상으로 여겨진 탓”이라고 분석했다.

대중문화가 산업화하면서 연예 권력은 방송사에서 스타와 연예기획사로 이동했다. K팝과 드라마의 인기로 해외에서 한국 연예인에 보내는 러브콜은 부쩍 늘었고, 다매체 다채널 시대로 접어들면서 스타를 보유한 연예기획사는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승리의 소속사였던 YG엔터테인먼트(YG)는 소속 가수를 특정 지상파 방송사의 음악프로그램에만 내보내기로 익히 알려져 있다. 기획사가 방송사를 길들이고 입맛대로 골라 나가는 ‘권력 역전 현상’은 오래 전부터 벌어지고 있다.

스타와 연예기획사의 영향력은 사회전반으로 확대됐다. 대기업 A사의 임원은 자신의 생일이나 회사의 큰 행사가 있을 때 유명 연예인을 초청하기로 유명하다. 스타와 인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경희대 이모 교수는 아이돌 록밴드 씨엔블루 멤버인 정용화를 부정입학 시킨 혐의로 지난 1월 2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용화를 대학원에 입학시켜 학과(경희대 국제캠퍼스 일반대학원 응용예술학과)의 명성을 높이려는 의도였다.

재계뿐 아니라 교육계까지 유명 연예인에 인맥을 대려고 혈안이 된 게 요즘 현실이다. 대형 K팝 기획사 출신 관계자는 “스타를 둘러싸고 사회 여러 인맥이 얽히다 보니 승리ㆍ정준영 사태처럼 경찰 유착 의혹까지 불거진 것”이라며 “그만큼 스타 권력과 기획사의 힘이 세져 젊은 연예인들이 ‘소속사가 해결해 주겠지’란 생각에 행동이 더 대담해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연예인 닮았다 칭찬” 이상한 한국 

한국에 온 지 10년이 돼가는 한 외국인 방송인은 “(한국 생활 초반) 한국 사람들이 연예인과 닮았다는 말을 칭찬처럼 주고받는 걸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연예인의 특권의식을 부추기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지혜원 경희대 교수는 “세계 최대 규모로 연예산업 종주국인 미국과 달리 우린 연예인을 필요에 따라 공인으로 호명하며 사회적 권력까지 쥐여줬다”고 말했다. 모든 방송사가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작해 국민이 새 스타 탄생에 열광하거나, 정부가 연예인에 ‘한류스타’ 등의 훈장을 부여하는 등의 사회적 사회적 분위기가 특권의식을 강화했다는 것이다.

연예인의 특권의식 조장에 한 몫 한 방송업계는 방조에 따른 부메랑을 맞고 있다. KBS는 지난 15일 결국 ‘1박2일’ 무기한 제작 중단을 선언했다. 정준영을 검증 없이 조기 복귀시켜 사회적 물의를 빚은 데 따른 ‘사후 약방문’이었다. ‘1박2일’ 제작진은 김준호ㆍ차태현의 내기 도박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새 의혹도 받고 있다.

승리ㆍ정준영 사태로 유탄을 맞는 연예인이 잇따르자 연예기획사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유명 배우가 소속된 한 연예기획사의 고위 관계자는 “승리와 정준영이 발이 넓어 친한 연예인이 많다”며 “언제 어떻게 불똥이 튈지 몰라 두 사람과 소속 연예인이 주고 받은 메시지 등에 문제가 없나 등을 확인하며 다들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라고 밝혔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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